최재혁 논설위원

5당(黨) 대선 주자 모두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改憲) 국민투표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주 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는 국회 개헌특위에 직접 참석하거나 서면을 통해 그렇게 밝혔다. 현재로선 문·안 후보 중 한 명이 집권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두 사람은 특위에서 개헌에 대해 적극적 입장을 개진했다. 문 후보는 정부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국회와 협력해 내년 초 개헌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안 후보는 당선되면 청와대 개헌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올 9월 정기국회 이전에 개헌 의견을 국회로 보내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했다. 올가을 또는 내년 봄부터 정부 개헌안이 국회안과 합쳐지는 과정을 예상해 본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대선 주자들이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권력축소형 대통령제 등 다양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거기엔 분권(分權)·협치(協治)라는 공통 가치가 관통한다. 대통령 권력 분산은 일치된 방향이다. 차기 대통령이 변심해서 "안보와 민생이 급하니 개헌을 유보하자"고 하는 일만 없으면 된다. 실제 그런 식으로 약속을 뒤집는 대통령들이 있었다. 국회 역할도 막중하지만 새 대통령 의지가 관건이다.

12일 국회 개헌특위에 참석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지난달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개헌안 초안(草案)을 접했다. 대선과 동시에 개헌 투표를 추진하기 위해 만들었다가 캐비닛에 들어간 안(案)이다. 4년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통일·외교·국방을 제외한 내각 구성과 내치 권한을 갖는 권력구조 개편은 그야말로 일부였고 전면적 수정이 있었다. 대통령의 국민 통합 의무, 공무원의 정치 중립, 양성 평등,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 권리, 국민의 정보 접근권, 국민투표제, 국민발안제, 소비자 권리, 소상공인 보호, 국가의 안전 관리 의무, 상시국회 도입, 감사원 독립, 지방정부에 대한 국가의 자치 보장 의무, 자치 입법권 확대 등이 신설됐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국가원로자문회 같은 조항은 삭제됐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 동안의 사회 변화를 반영했다. 조금 넘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누가 만들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회 개헌특위는 올 초부터 그 작업을 하고 있다.

개헌안을 두고 또다시 가치·이념의 대결·대립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 후보는 헌법 전문(前文) 개정을 첫째 과제로 꼽으면서 "새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촛불항쟁의 정신을 새겨야 한다"고 했다. 안 후보도 다른 자리에서 "(5·18 정신뿐만 아니라) 작년 11월 비폭력 평화혁명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촛불'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국민도 꽤 있다.

헌법 전문은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평가와 가치 판단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헌법 전문에 기대 '역사 전쟁'을 벌이는 모습도 봐왔다. 전문 개정을 갖고 다투기 시작하면 개헌이란 배는 산으로 갈 게 뻔하다. 3당 초안이 전문은 거의 손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개헌이란 시대적 과제 앞에서 어느 한 진영이 과욕(過慾)을 부리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