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 주자들이 이미 적자 전환 위기에 처한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선심성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육아휴직자 급증으로 고용보험기금이 10년 안에 완전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4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 없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급여 인상, 5000억원 재원 필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는 현재 최고 100만원인 육아휴직급여를 최고 200만원으로 올린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최장 12개월인 육아휴직 기간 가운데 처음 3개월은 직전 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공약까지 제시했다. 문제는 대선 주자들 공약처럼 육아휴직급여를 최고 2배 수준으로 인상하면 지난해 수급액 기준으로 5000억원 안팎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육아휴직급여 인상이 "복지 재분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금이 높고 육아휴직 신청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기업 근로자와 공무원 등이 육아휴직 제도를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300인 이상 대기업 여성 취업자(73만6000여명) 가운데 육아휴직급여를 받은 사람(4만3792명)의 비율은 6%에 육박했다.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 여성 취업자(1037만8000명) 가운데 혜택을 받은 사람(4만6003명)은 0.5%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래픽〉.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중소기업의 근무 환경은 육아휴직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시·일용직은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수급액 인상도 중요하지만 수급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최대 4조원 필요
고용보험기금은 근로자가 임금의 0.65%, 사용자가 0.9~1.5% 부담하는 고용보험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7일 '사회보험 중기 재정 추계'를 발표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2020년 적자로 돌아선 뒤 2025년 적자 폭이 2조6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대선 후보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은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에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업자에게 최장 8개월 지급되는 실업급여 지급액의 하한선은 최저임금의 90%로 정해져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실업급여 지급 총액도 자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의 공약대로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맞추려면, 지난해 최저임금(6030원)보다 60% 이상 올려야 한다.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액(5조8557억원)을 적용해 단순 계산할 경우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추가 재원이 4조원 가까이 필요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자의 재취업 시기를 늦추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만원으로 인상되면 실직 직전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사람은 실업급여로 월 216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육아휴직급여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연간 4조원 이상 재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선 후보는 사실상 한 명도 없다. 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은 "재원을 추가 조달하려면 고용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고용보험기금 부족분에 대해 세금을 투입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보험료율 인상 부담을 줄이려면 실업급여 지급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