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선 주자들이 이미 적자 전환 위기에 처한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선심성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과 육아휴직자 급증으로 고용보험기금이 10년 안에 완전 고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4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 없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육아휴직급여 인상, 5000억원 재원 필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등 주요 대선 후보는 현재 최고 100만원인 육아휴직급여를 최고 200만원으로 올린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최장 12개월인 육아휴직 기간 가운데 처음 3개월은 직전 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공약까지 제시했다. 문제는 대선 주자들 공약처럼 육아휴직급여를 최고 2배 수준으로 인상하면 지난해 수급액 기준으로 5000억원 안팎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육아휴직급여 인상이 "복지 재분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금이 높고 육아휴직 신청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기업 근로자와 공무원 등이 육아휴직 제도를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300인 이상 대기업 여성 취업자(73만6000여명) 가운데 육아휴직급여를 받은 사람(4만3792명)의 비율은 6%에 육박했다.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 여성 취업자(1037만8000명) 가운데 혜택을 받은 사람(4만6003명)은 0.5%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래픽〉.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중소기업의 근무 환경은 육아휴직을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시·일용직은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수급액 인상도 중요하지만 수급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최대 4조원 필요

고용보험기금은 근로자가 임금의 0.65%, 사용자가 0.9~1.5% 부담하는 고용보험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7일 '사회보험 중기 재정 추계'를 발표하면서 "고용보험기금은 2020년 적자로 돌아선 뒤 2025년 적자 폭이 2조6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대선 후보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약은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에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업자에게 최장 8개월 지급되는 실업급여 지급액의 하한선은 최저임금의 90%로 정해져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실업급여 지급 총액도 자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의 공약대로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맞추려면, 지난해 최저임금(6030원)보다 60% 이상 올려야 한다.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액(5조8557억원)을 적용해 단순 계산할 경우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추가 재원이 4조원 가까이 필요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자의 재취업 시기를 늦추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만원으로 인상되면 실직 직전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사람은 실업급여로 월 216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육아휴직급여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연간 4조원 이상 재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선 후보는 사실상 한 명도 없다. 한 국책 연구소 연구원은 "재원을 추가 조달하려면 고용보험료를 대폭 인상하거나 고용보험기금 부족분에 대해 세금을 투입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보험료율 인상 부담을 줄이려면 실업급여 지급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8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