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재정 지출 증가율을 지금의 두 배인 7%로 올리고 필요하면 증세(增稅)도 추진하겠다는 경제 공약을 내놓았다. 늘린 예산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 교육·보육, 보건 복지 등의 10대 핵심 분야에 집중 배정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일자리가 매년 50만개씩 더 생기고 경제 활력도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는 이를 '사람 중심 경제'라 이름 붙였지만 결국 정부가 세금으로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뜻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 더 많은 돈을 쓰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복지나 교육·환경·안전처럼 국민의 삶과 관련된 공공 서비스 부문은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 성장과 활성화, 일자리 창출까지 정부 주도로 이루겠다고 하는 문 후보의 낡은 패러다임이다. 재정 지출을 통한 관(官) 주도 성장 정책은 대부분 나라에서 실패로 끝났다. 일시적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검증이 끝난 지 오래다.

그리스의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갈 것도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대표적 사례다. 장기 불황 탈출을 위해 일본 정부는 재정을 풀어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반짝 효과뿐이었다. 결국 경제는 살리지도 못한 채 정부 채무만 눈덩이처럼 불리는 '실패의 20년' 세월을 보냈다. 일본 경제는 아베 정부 들어 규제를 풀고 기업 활동을 촉진하는 민간 주도 성장 정책으로 전환한 뒤에야 회복세로 돌아섰다.

정부 지출을 늘리면 민간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이른바 '구축(crowding out) 효과' 이론으로 입증돼 있다. 한 나라의 가용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돈과 사람과 기능을 공무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창업가·기업가들에게 넘겨 새로운 산업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법뿐이다. 그래서 세계 모든 정부가 시장(市場)을 활성화하고 각종 유인책으로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게다가 문 후보는 구체적 재원 대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공약대로라면 4년간 약 150조원이 더 필요하지만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할지에 대해선 실현 가능한 방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재정 적자 때문에 매년 30조원 국채를 찍어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더 늘린다면 나랏빚만 늘어나는 일본형 실패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

적어도 경제성장을 말하려면 문 후보가 먼저 기업 활동을 발목 잡는 규제부터 정리해야 한다. 문 후보는 말로는 낡은 규제를 없애겠다거나 민간이 경제를 선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정책은 정반대다. 문 후보가 이끄는 민주당은 그동안 각종 경제 활성화 법안을 반대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국회 통과를 막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며 노동개혁법, 심지어 일부 제한된 지역에 국한해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 프리존 특별법까지 막았다. 그래놓고 경제를 성장시킨다며 세금 더 내놓으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