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북(對北) 선제타격 가능성을 잇달아 시사하면서 우리 내부에 구체적 날짜까지 지목한 '북폭설'이 퍼지고 있다. 항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 다시 배치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달이 뜨지 않는 27일 선제타격설까지 나도는 것이다. 일본 대사가 한국에 귀임한 것이 일본인 대피를 위한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이를 부추겼다. 국내 외국계 기업 철수설, 김정은 망명설을 담은 SNS도 떠돈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소문들이다. 군사 공격 날짜가 미리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대북 선제타격은 트럼프 행정부의 여러 대북 옵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굳이 확률을 따지자면 역대 미국 행정부 중에서 이를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을 위해선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타격 이후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의 대북 선제타격은 이 둘 모두가 불확실하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어제 "우리 입장에서는 선제타격이 가져올 다른 여러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미 국방장관은 대북 선제타격 옵션을 미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반드시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도 강조해왔다. 선제타격은 그 가능성을 '0'이라고 할 수 없고, '0'으로 만들 필요도 없지만 아직은 명백하게 외교적 압박의 영역 안에 있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떠드는 것은 지나친 과잉, 과장 반응일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다가 미국과 북한이 전격 대화에 들어갔던 20여 년간의 패턴이 다시 작동할 가능성을 주목해야 할 때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비핵화된 한반도를 원하지만 북한 정권을 교체할 목표는 없다"고 밝혔다. 또 "북한과 대화의 전제조건은 모든 무기의 시험과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가 아닌 '동결'을 전제로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 발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변화다. 지난 90년대 초 시작된 북핵 위기는 북한의 합의 파기→핵·미사일 도발→ 한반도 긴장 고조→협상 및 타협→보상의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이는 미국이 근본 해결이 아니라 정권의 단기적 필요에 따라 문제를 다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면 불길하다.

지금은 유엔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강력하게 이행해야 할 시점이다. 중국도 북핵으로 인한 자신들의 국익 피해를 피부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북한 체제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대북 조치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되 당장은 인내심을 갖고 제재와 압박에 총력을 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