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 한 마을의 모습. 베르셰바 대학에서 연구해 온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23명의 엄마를 인터뷰한 책 ‘엄마됨을 후회함’에서 “누구나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두려움과 우울함을 감내해야만 하는 엄마의 역할이 어떤 엄마들에게는 후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자는 “엄마들이 말하는 후회는 엄마로서 삶에 대한 후회일 뿐 아이들에 대한 후회는 아니었다”고 명확히 구분한다.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베르셰바의 네게브 벤-구리온 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엄마들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사회가 거는 기대를 연구했다. 그녀는 2011년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스라엘 유대인 여성들을 연구한 책 '선택하기'를 출간해 파장을 일으켰고, 그 뒤 '엄마됨을 후회함'을 출간해 전 세계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엄마됨을 후회함'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입에조차 올리지 않았던 엄마들의 감정을 세심히 다루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세상의 후회 중 가장 논쟁적인 후회를 다룬 것일 수 있다. 오나 도나스는 엄마 23명을 장시간 추적 인터뷰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전제를 제시한다. 일단, 누구나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는 임신과 출산이 암묵적인 강요였거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임신과 출산에 축복이라는 단어만을 붙이길 고집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엄마들이 느꼈던, 혹은 느낄 수밖에 없었던 혼란과 상실감, 두려움을 영영 모르는 채 살 수도 있다. 아이는 축복이라는 굳건한 믿음에 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깊은 죄책감을 가진 실제 엄마들의 인터뷰는 그래서 내 마음을 더 깊숙이 건드렸다.

"내 딸이 욕조에 앉아서 (딸은 만 세 살이에요)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엄마, 안 씻겨져. 엄마는 아주 깨끗하게 씻었는데 (마야는 손바닥의 하얀색을 내보였다) 하지만 여기는 아직도 완전 갈색이야. (그녀는 손등을 내보이며 마구 문질렀다) 그때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요. 그 일 후 2주일 내내 멍하니 있었어요…. 갑자기 유년기의 모든 두려움이 생생하게 살아났어요. 너무나 우울했어요. 끔찍했던 유년기를 다시 한 번 겪어야 하니까요."

이 문장을 읽으며 어째서 눈물이 났을까. 그건 어쩌면 내 엄마가 주문처럼 어린 내게 속삭였던 말을 연상시켰기 때문일지 모른다.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돼. 너는 당당히 홀로 설 수 있어야 해. 직업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자로 사는 건 참 힘든 일이란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이런 얘기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반복된 말은 특유의 리듬과 주술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은 딸들의 유전자에 각인돼 오랜 시간 영혼의 언저리에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나처럼 살지 마!'는 아프지만, 반복된 만큼 익숙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지친 엄마가 내 눈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엄마가 된 걸 후회해." 만약 엄마가 나를 낳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어울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아이의 내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에서 가장 세심히 읽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장면들이다.

"아이들과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엄마로의 이행에 대한 후회와 아이들에 대한 후회를 자녀에게 구별해 설명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또 후회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구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은 항상 들어온 것과 달리 그다지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과 '나는 너희들의 존재를 후회한다'의 차이 역시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구별 없이 아이들에게 고백하면 모든 게 한 가지 뜻이 될 수 있다. 즉 '엄마로서 삶에 대한 후회가 아이들을 후회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저자는 엄마들의 이 고백을 조심스레 옮기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로서 삶에 대한 후회가 아이들 자체에 대한 후회는 아니며, 이 부분을 결코 혼동해서도 오역해서도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아이러니컬한 건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는 엄마들이 오히려 자신의 후회를 반대 방향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후회할수록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상한 것이다. 그런 엄마 중에는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후회했기 때문에 더욱더 아이에게 강한 의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가 어려서 육아에 시달려야 하는 엄마들의 후회는 각자의 상황에서 영원히 벗어나고자 하는 암호화된 소망으로 읽힐 수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정상적인' 생활 이전의 '자아'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점과 종점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점은 현실과는 정반대편에 있다. 마치 영원히 종점이 존재하지 않는 버스에 올라탄 기분에 빠지는 것이다. 배우자가 아무리 육아를 분담해도 엄마로서 시간은 끝없이 순환한다. 한 선배가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예쁘지만 그 아이에게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그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를 낳지 않았기를 원한 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엄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았던 거다. 엄마의 인생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출산을 후회하는 것 자체가 범죄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미국의 운동가 유디스 스태트먼 터커의 차별화 전략을 이렇게 소개한다. 터커는 '역할로서의 삶'과 '관계로서의 삶'을 구별한다. 그는 엄마들의 삶을 '관계'로 설명하고, 역할이나 의무 혹은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런 전제에서 시작해야만 엄마들 삶의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너무도 '당연'하고 '정상'이 되어버린 말. 예를 들면 '아이들은 기쁨이요, 축복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족은 모든 것을 능가한다'와 같은 말들을 외과수술같이 정밀하게 해체하기 위해서예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말의 파괴적인 힘을 파악하지 못하면 사회와 문화 DNA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그래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게 돼요."

어떤 말은 세심히 맥락을 만져 다루어야 한다.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말 역시 그런 종류의 말이다. 인터뷰한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이 후회하는 건 부모로 사는 것이지,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뚜렷이 구별해 말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한번쯤 엄마됨을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던 여성에게 줄 수 있는 강력한 처방전이란 생각이 든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우리가 모순으로 가득 찬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과, 엄마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엄마됨을 후회함 ― 오나 도나스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