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다시피, 책이라는 건 산 나무의 생명을 끊어야만 만들 수 있는 죄 많은 물건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예로부터 칠칠치 못한 책을 만드는 행위를 불경히 여겼다. 못난 책을 가리켜 대추나무와 배나무에 내린 재앙이라 일컫는 ‘화조재리(禍棗災梨)’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러한 금기에도 스스로 나무에 죄를 짓는다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출판 ‘나무야미안해’ 김미체(31) 대표와 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낸 웹툰작가 ‘케로로장재미슴(별칭 김케장)’과 ‘Heekey(희키)’다.

문화 창달에 앞장서야 할 출판사 대표와 작가가 왜 나무에 미안해하는 건지,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어지는 동영상이 실제 인터뷰다. 케로로장재미슴 작가는 개인 사정 때문에 불참했다. 인터뷰를 보기 전 아래 링크를 통해 희키 작가의 작품 중 일부를 봐 두는 걸 추천한다.

동물의왕국(비속어주의)
우물 밖 개구리(비속어 주의)
청개구리(비속어 주의)

이 만화들과 동영상만 봐도 인터뷰 이해에 큰 무리는 없지만, 편집 중 잘려나간 대화 내용도 모두 전하고자 아래에 상세한 인터뷰 내용을 적었다. 시간 되시는 분이면 읽어 보셔도 나쁘지 않겠다. 참고로 희키 작가는 이번이 처음 하는 언론 인터뷰라 한다.

―('나무야미안해' 는) 소규모 출판사로 하는 건가.
김 대표 : 맞다. 거의 나 혼자 출판사 일을 다 하고 있다. 전업은 아니고, 동양철학 위주로 책을 내는 출판사 '문사철'에서도 일하고 있다. 그곳 역시 큰 회사는 아니지만.

―김케장 작가와 희키 작가 작품을 모아 책을 내게 된 계기는?
김 대표 : 원래 김케장 작가와 몇 년간 알고 다니던 사이였고, 그분이 책을 내고 싶어하신다는 걸 애초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이 팔릴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출판을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었다. 솔직히 다른 작가들에 비해 그림체가 별볼일 없는 수준이니.

케로로장재미슴(김케장) 작가의 작품 '마법사 베스트셀러' 중 일부. 김 대표는 김케장 작가 그림체가 이런 수준이다 보니 책을 만들어봤자 팔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한다.

그런데 작년에 웹툰 작가 ‘카광’이 텀블벅으로 티셔츠를 팔아 펀딩(기금마련)에 성공한 걸 보자 우리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8월쯤 김케장 작가 작품으로 책을 내겠다며 온라인 펀딩을 해 봤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았다.(3주 만에 1300만원이 모였다 한다)

카광 작가의 '혼밥하는 만화' 중 일부. 카광 작가는 이 만화를 찍은 티셔츠를 만든다며 펀딩을 해 4000만원을 모았다.

―다니던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고 새로 회사를 연 이유는?
동양철학 서적 전문 출판사인 '문사철'에서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만화책을 내기가 뭐했다. 그래서 아예 새 출판사를 세우고 '김케장 단편선' 컨셉에 맞는 이름을 지은 거다. 출판사 이름으로 처음엔 '쓰레기' '트래쉬 북스(trash books)' 등을 떠올렸다. 그러다 '나무야미안해'가 중의적인 느낌으로 괜찮을 것 같아 선정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멀쩡한 책을 만들 기회가 있으면, 이름 컨셉을 환경보호와 엮어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

―희키 작가는 '나무야미안해'의 중의적 뜻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김 대표 : 환경보호 이미지는 15% 미만이고 나머지는 '김케장 단편선'과 비슷한 느낌이다. 희키 작가가 디시인사이드 카툰 연재 갤러리(카연갤)에서 인기는 있었지만, 솔직히 그림 질은 김케장 작가보다 크게 웃돌진 않는다. 그러니 이 그림 수준 그대로 책을 찍어내면 우리 컨셉에 맞게 괜찮겠다 싶었다. 막상 작업을 시작하니 몽땅 다시 그려 주신 통에 나무에 좀 덜 미안해 지긴 했지만.

―김케장 작가처럼 희키 작가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
김 대표 : 그렇지 않다. 만화를 보고 내가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연락을 한 거다.

희키(왼쪽) 작가와 김미체 나무야미안해 대표.


―그렇다면 이제 희키 작가에게 질문하겠다. 작가 자신 소개를 부탁한다. 닉네임(희키) 유래부터 말한다면.
희키 : 희키 하면 사람들이 흔히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은둔형 외톨이)를 연상하는데, 그 말과는 관련이 없다. 정작 내 사는 모습은 그 말과 관련이 있지만. 하여튼 본명 끝글자('희')에 '키'를 붙인 거다. 그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로는, 이런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고른 거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다른 사람과 섞이지 않고 잘 나오니까.
또 하필 다른 글자 다 제쳐놓고 '키'를 붙인 이유는, 고등학교 때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아무 글자 뒤에나 '키'자만 붙이면 그럴싸하다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생각나서 그랬다. 사실 별 의미는 없다.

―전공은 미술인가?
희키 :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못 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다. 미대 지망생이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희키 작가가 철학 하는 사람이 아니냐 한다. 작품에 해석의 여지가 많고 심오하다 해서.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희키 : 물론 그분들 의견을 존중하고. 그분들이 계속 제 작품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해 주시길 원한다. 사실 생각 없이 그린 작품은 없다. 몇몇 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걸 독자들이 뜻을 갖다 붙인 거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생각한 바가 작품에 잘 반영되느냐 여부가 문제긴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진 잘 되는 듯하다.

―그림 올리는 곳으로 카연갤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
희키 :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작품에 대한 피드백도 잘 주는 곳이니까. 그래서 디시인사이드에 가입하고 바로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전까진 디시인사이드 아이디가 없었던 건가?
희키 : 알고는 있었고 워낙 유명한 커뮤니티니 가끔 들어가긴 했지만, 본격적 활동은 작품을 올리기 시작한 때(지난해 5월)부터 했었다.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때 창조한 거다.

―개구리 우화를 가지고 그림을 몇 개 그렸는데, 개구리를 주제로 택한 이유가 따로 있는지.
희키 : '동물의 왕국' 개구리는 독개구리인데, 이야기 흐름상 재미를 주고 싶어서 넣은 거고 특별한 의미가 있던 건 아니다.
'우물 밖 개구리'에선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우물 안 개구리' 표현에서 발상을 틀었다. 우리는 다 나름의 한정된 시공간에서 활동하는 우물 안 개구리다. 그런데 자기가 우물 밖에 있다 떠드는 사람이 많으니 그걸 빗대 만화를 그렸다.
'청개구리' 경우엔 청개구리가 비 오는 날 우는 게 불효자라 그렇다는 잘 알려진 옛 이야기가 있는데. 하지만 청개구리 입장에선 그 해석이 억울할 수도 있으니까 그 시각에서 만화를 그려본 거다.
결국 '개구리' 자체에 별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개구리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된 거라 보면 되겠다.

―앞으로도 만화 쪽으로 전업을 할 생각이 있나.
희키 : 할 수 있는 때까지는 쭉 해보고 싶다.

―만화 사이트 '탑툰'에 연재가 예정된 걸로 알고 있다.
희키 : 별문제가 없으면 4월, 늦어도 5월부터는 연재가 시작될 것 같다. '잭과 콩나무' 등에 나오는 극화체는 아니고, 'Heekey 단편선'에 나오는 것처럼 간단한 그림판 그림체로 그릴 예정이다.

―그린 만화에서 비속어를 섞어 쓰는 솜씨가 아주 찰지다는 평가가 많다. 깊이 고민해 나오는 결과인가, 아니면 자연스러운 평소 어투인가.
희키 : 평소 스타일은 아니다. 막 깊은 고민을 하고 쓰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일상에서 쓰는 말도 아니다.

―'탑툰' 플랫폼에서 정식 연재를 하게 되면 만화에 비속어를 쓰기 어려워 질 텐데 상관없는가.
희키 : 그렇다면 개인 블로그 등에서 원래 스타일대로 만화를 그리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재가 없거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천하긴 어려울 듯하다.

―'나무야미안해'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 부탁한다.
김 대표 : 다른 작가들 책을 내 외연을 넓혀갈 계획이다. 아직 실제 계약서를 쓴 게 아니라 확실히 까진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몇몇 작가들이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김케장 단편선'과 'Heekey 단편선'도 예상보다 잘 팔리고 있다. 'Heekey 단편선'은 다음 주에 2쇄 들어갈 예정이다. 1쇄 1300부가 거의 다 팔리고 50부 정도만 남아 있다. '김케장 단편선'도 1쇄 1300권을 다 팔고 2부 1000권을 찍었다.

―새 작가를 영입한다 했는데. 계속 비교적 거칠고 퀄리티 낮은 그림체 작가들을 모으는 건가?
김 대표 : 작가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응할 생각이 있다. 너무 사무적인 관계 말고, 김케장 작가나 희키 작가처럼 편하게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고 싶다.

김미체 나무야미안해 대표.

―나무가 미안할 정도 작품뿐 아니라 고퀄리티로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나.
김 대표 : 솔직히 뚜렷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재밌어 보여서다. 또 다른 플랫폼이나 대형 출판사에서 원하지 않을 게 뻔한 (저퀄리티) 작품들인데, 내용을 보면 그림체 때문에 묻히기엔 아까운 면도 있고. 큰 곳에서 거두어 갈 것 같진 않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살리고 싶었던 거다.

―현재 지속 가능할 정도 동력이 나오고 있는지?
김 대표 : '나무야미안해' 책만으로는 솔직히 어렵다.

―'나무야미안해'는 언제부터 시작했던 건지?
김 대표 : 작년 8월에 출판업 등록을 했다. 그때가 딱 '김케장 단편선' 텀블벅 펀딩을 시작한 시기다.

―나무한테 왜 이런 짓을 하냐고 항의한 사람은 없었는지.
김 대표 : 그런 사람은 없었는데, 책 내용이 저속하다고 환불한 사람은 있었다. 고등학생이 책을 주문했는데, 하필 이걸 어머님께서 받은 거다. 아드님을 한바탕 혼낸 뒤 우리 쪽에 연락해 환불을 요청하셨다. 뭐 그 정도가 전부다. 아, 물론 환불은 해 드렸다.

―책 출판하기까지 석 달 준비하고 번 돈은 한두 달 인건비 정도라고 하셨는데, 돈 벌 생각으로 하긴 어려울 듯하고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지.
희키 : 적자 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 그저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할 뿐이다.
김 대표 : 처음부터 돈 벌 생각으로 한 건 아닌데 생각보다 잘 나가서 다행이고. 서점 출시되면 더 팔릴 것 같다. 게다가 이 출판을 계기로 희키 작가가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도 하게 됐으니.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아직은 '재미'를 찾는 게 더 좋으니까.

―다른 작가들도 호응을 보내오고 있다고 했는데?
김 대표 : 연락을 주거나 꼭 같이 책 내고 싶다고 연락해 주신 카연갤 작가가 3명 정도 있다.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상태여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 지금은 김케장 작가 손을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찔러보고 있다.

―마지막 한마디씩 하는 걸로 정리하자.
희키 : 책 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탑툰' 계약직으로 있는 상태니 잘 풀릴 수 있도록 조회 많이 부탁한다. 한 번만 살려주신다는 마음으로…
김 대표 :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나무에 미안할지도 모르는 책 꾸준히 많이 만들 테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 나무에 미안해져도 여러분이 재밌게 읽어 주신다면 그걸로 감사하다. 물론 책만 팔자고 이런 이야기 하는 건 아니고, 이 인터뷰 통해 좋은 작가 많이 모실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