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랑했던 고향 친구이자 첫 뮤즈였죠. 문제는 세상에 대한 저의 호기심이었어요. 새로운 경험을 위해 고향 팔레르모를 떠나 로마로, 코펜하겐으로 여행하고 싶은데 클라라는 이해 못했죠. 저는 떠났고, 우린 헤어졌어요."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파올로 라엘리(Raeli·23)는 수다스러웠다. 왼쪽 귀에 피어싱 3개, 팔뚝엔 문신이 새겨져 있는데도 불량스럽긴커녕 앳돼 보이던 그는, 10만 관객을 돌파한 '유스―청춘의 열병, 그 못다한 이야기' 전시 포스터에 실린 자신의 사진 'Soar(날아오르다)'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클라라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완전히 딴 사람이 돼 있었죠. 고심 끝에 편지를 썼고, 며칠 후 절 찾아온 클라라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어요. 저녁 불빛으로 찬란한 도시를 배경으로 팔을 휘저으며 기뻐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찍은 겁니다."

“사진 속 여성요? 저의 첫 뮤즈랍니다.”파올로 라엘리가 자신의 대표작‘Soar’앞에서 주인공과 똑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는 관람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파올로 라엘리는 라이언 맥긴리, 고샤 루브친스키를 이어 세계적 신드롬인 '유스 컬처'의 상징으로 떠오른 사진작가다. 5월 28일까지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열리는 '유스' 전시에서 젊은이들의 아픔과 사랑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착한 사진들을 선보여 우리 20대들에게도 우상으로 떠올랐다. 지난주 서울에 온 라엘리는 "한국에 오려고 여권을 처음 만들었다. 유럽을 벗어나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본 것도 처음"이라며 웃었다. 서울 숙소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찍은 서울 야경 사진을 올리고 팔로어들에게 '번개팅'을 제안한 것. "100명 넘는 친구들이 모여 한강공원을 걷고, 불고기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마법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 수업을 전문으로 받은 적은 없다. "이탈리아 10대들이 그렇듯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평범한 아이"였다. "나의 열일곱 살도 외롭고 슬프고 혼돈스러웠죠.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칠리아 섬의 '고립된' 도시를 벗어난 건 열여덟 살 때다. 어머니 고향인 덴마크 코펜하겐을 시작으로, 밀라노, 로마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다. 대표작 'Soar'처럼 노을이 사진의 주 배경이 된 건 "하루 중 석양 무렵이 특별한 기술 없이도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어떠한 인위적 구도나 연출 없이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을 수채화처럼 그려내는 것이 라엘리 사진의 매력. "뭔가를 잊는다는 게 가장 두려워요. 오늘 아침 파랗게 숨 쉬던 하늘, 친구의 해맑은 미소를 내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20년 후 이 순간을 가장 잘 기억하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야 한다고 믿었어요."

전 지구적으로 청춘들 앞에 놓인 암울한 현실에 비하면 사진이 너무 감상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라엘리는 답했다. "세상이 동화 같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힘든 일상에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은 반드시 있지요. 내 사진이 절망하는 청춘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그들을 미소 짓게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