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 망할 놈의 힐리스!"

경기 성남에서 음식점을 하는 황순호(41)씨는 최근 페이스북에 이런 탄식을 한 줄 남겼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뒷모습 사진도 함께 올라왔다. 아들이 하굣길에 바퀴 달린 신발, 이른바 '힐리스'를 신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만 미끄러지면서 어깨가 빠지고 팔꿈치에 골절을 입었다고 했다. 댓글이 순식간에 여러 개 달렸다. '우리 아들도 이번에 다리 다쳤어요.' '아무리 타지 말라고 애원해도 매일 가방에 넣고 가서 몰래 신어요.' 황씨는 "바퀴 달린 신발 좀 만들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게 규제 좀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힐리스는 2003년쯤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바퀴 달린 운동화다. 국내에선 10년 전 몇몇 아이돌 가수가 신고 무대에 오르면서 반짝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신발에 달린 바퀴 탓에 넘어지는 사고가 워낙 많고, 빠르게 달리다가 장애물과 부딪힐 우려도 많다는 것. 실제로 외국에선 힐리스를 신고 달리던 어린이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2004년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안전 검사를 받지 않는 제품은 아예 팔지 못하도록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국내 시장에선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다. 그런 힐리스가 최근 다시 어린이·청소년 사이에서 인기 상품으로 부활하고 있다.

1998년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던 바퀴 신발 ‘힐리스’. 10년 만에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끌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힐리스 공식 수입 회사인 토박스코리아는 작년 2월 미국 힐리스사에서 1만여 켤레를 수입해 온 것을 석 달 만에 다 팔았다고 했다. 인기의 시작은 몇몇 인기 블로거·유튜버가 힐리스를 타는 영상을 올리면서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초통령(초등학생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튜버 허팝(29)이 "어릴 땐 힐리스가 비싸서 못 탔는데 지금 이렇게 탄다"면서 힐리스를 신고 즐기는 영상을 올렸는데, 이 영상의 조회 수가 170만건이 넘으면서 관심이 폭발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문제는 신발은 이렇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데, 정작 안전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데 있다.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은 관람객들의 바퀴 신발 착용을 금지했다. 아이들이 바퀴 신발을 신고 여기저기 미끄러지듯 지나다니는 탓에 관람객들끼리 부딪히고 다치는 일이 빈번하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 백화점도 사고가 잦은 곳으로 꼽힌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측은 "매장에서 헬멧이나 무릎 보호대 같은 안전 장비를 꼭 같이 사라고 권유하고 있지만, 이를 고객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소비자원도 힐리스에 대해 소비자안전경보를 발령했지만 이 역시 권고일 뿐 강제는 아니다.

정부 부처에선 "관련법이 없어서 규제하기 힘들다"고 얘기할 뿐이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바퀴 달린 운동화는 인라인스케이트와 달리 도로교통법으로 관리할 수도 없고, 어린이 놀이 시설 안전관리법으로 규제하기도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