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직장인 자녀는 효자, 자영업자 자녀는 불효자로 만드는 건강보험 제도를 왜 고치지 않나요?"

오는 6월 말 퇴직한다는 한 회사원이 국회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합의됐다는 보도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영업자 아들을 두는 바람에 앞으로 건보료로 매월 15만원씩 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아들이 회사원이라면 피부양자로 인정받아 건보료를 전혀 안 내도 된다. 그는 "지금처럼 직장과 지역을 분리하면 회사원 가족은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건보료를 꼬박 내야 한다"며 "자녀 직업 때문에 건보료를 내고 안 내고가 결정되는 게 공정한 제도냐"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는 최근 건강보험료 제도 개편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지역가입자 건보료 일부를 깎아주는 것일 뿐, '소득·재산'에 건보료를 매기는 기존 제도는 그대로다. 정부는 "지역 가입자는 소득 파악률이 낮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시계를 되돌려보자. DJ 정부는 당시 건보료를 소득에만 매기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조합 통합을 밀어붙였다. 이후 지역가입자도 소득에만 건보료를 물릴 시도를 몇 차례 하더니 이번 정부는 아예 '지역가입자 소득 파악'은 불가능하다며 두 손 든 것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내면서 '부대의견'에 '건보료는 소득에 부과하는 게 원칙이다. 소득 파악 정도를 고려해 재산에도 부과할 수 있다'는 실속 없는 몇 구절 추가해 생색만 냈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이번 개편은 직장과 지역 건보료의 모순을 그대로 방치해 한 해 수천만 건 넘는 민원은 여전히 쏟아질 것"이라고 혹평했다. 정부가 그동안 해온 일을 보면 한심하다. 지역가입자 소득을 파악하려는 노력 대신 한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무조건 직장가입자로 보내 민원 많은 지역 가입자 숫자 줄이기에 주력했다. 이 덕분에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직장으로 옮겨 대부분 건보료가 떨어졌다. 대신 직장인 피부양자만 양산시켜 건보료 면제자(2046만명)가 지역가입자(1426만명)보다 많아지는 왜곡 현상을 자초했다.

앞으로도 직장에서 지역으로 옮기면 건보료가 오르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퇴직자들은 건보료 폭탄을 피해 '위장 취업'을 한다. 실직해 소득이 없는데도 아파트 공시가격이 올랐다며 건보료를 더 내라 한다. 직장인의 배우자는 소득·재산이 없으면 어디에 있든 건보료 면제지만, 지역 가입자의 배우자는 주소를 옮기면 별도로 건보료를 물린다.

직장과 지역을 통합했으면 '동일한 기준(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과'가 마땅하다. 하지만 '직장인이냐 지역가입자이냐에 따라 '소득'과 '소득·재산'이란 2개의 잣대를 번갈아 들이대니 건보료가 공정할 리 없다. 정부는 이번 건보료 개편을 발표하면서 2022년에도 여전히 소득으로 건보료를 단일화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전 국민의 동일한 건보료 부과'는 물 건너간 것일까.

건강보험은 올해 도입 40년을 맞는다. '적정 부담-적정 급여'와 '보장성 확대'를 위해 새 옷을 갈아입을 시기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불공정한 건보료 외투를 입고 있는 한 건보제도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과연 건보료를 공평하게 부과할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