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오늘(27일) 오후 광주를 시작으로 대선 경선을 본격 개막한다. 민주당 소속 후보들은 '본선 같은 경선' 중에서도 이날을 사실상 경선 판도를 가를 최대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세론이 유지되느냐 꺾이느냐를 판가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지율 2위 다툼을 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각각 '어게인(Again) 2002 광주의 기적'을 내걸고 문 전 대표의 압도적 승리를 저지, 역전 돌풍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과연 지난 2002년 '노무현 돌풍'을 만들어냈던 '광주 드라마'는 재연될 수 있을까?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극적인 역전극으로 승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① 2002년 '노풍'의 조건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이인제 대세론'을 무너뜨린 노풍(盧風)'으로 요약된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에 맞서 정권 재창출을 고민하던 민주당은 국내 정당사상 처음으로 '일반 국민 참여 경선'과 '전국 순회 투표'라는 새로운 룰을 도입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새로운 룰 속에서, 지지율 3%에 머물던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세라던 이인제 후보를 꺾은 이변을 연출했다.

이는 이후 '군소 후보라도 바람만 불면 얼마든지 경선 과정에서 대세 주자를 얼마든지 꺾을 수 있다'는 정당 정치의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실제 2002년이후 주요 정당 경선에서 '노무현 드라마' 같은 극적인 '바람'으로 판도를 뒤집은 일은 없다시피 했다. '완전 국민 경선'이나 '전국 순회 투표'가 식상해진 것도 더 이상의 노풍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과 관련 있다.

어쨌든 지금 지지율 2·3위의 안희정·이재명 후보는 15년 전의 '돌풍'과 '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55~60% 이상 과반 득표만 저지하면 직후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충남 경선에서 승리, 대역전극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이 후보도 강력한 리더십이나 선명성을 부각해 도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유독 준비기간이 짧은 올해 대선에서, '대선 재수생'으로 안정된 조직력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후보를 꺾을 다른 방법이 '경선 드라마'가 아니면 없다는 얘기도 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최근 '전두환 표창' 발언에 대해 광주 시민들을 만나 해명하는 모습.


② 야권의 심장, '광주 민심'을 누가 얻는가

'민주당 경선 드라마'의 핵심은 광주 경선이다. 2·3위 주자가 오늘 광주에서 1위를 하거나 문재인 대세론을 저지하기만 해도 '그 이후는 모른다'는 것이다. 호남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었고, 호남의 심장은 광주다. 호남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한 야권의 후보는 정통성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고, 본선에서 승리하지도 못했다.

'문재인이 광주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호남의 '반문(反文) 정서'다.

실제 15년 전 호남은 부산 출신 노무현의 '본선 경쟁력'과 '진정 어린 호소'를 받아들여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과 호남 인사 배제, DJ 정부 대북 송금 특검 등으로 '호남 홀대론'을 자초했다.

호남은 아직도 노무현 청와대의 핵심이었던 문 전 대표에 대해 완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문 전 대표가 지난 총선에서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어도, 광주 지역구를 모조리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에 뺏기는 등 호남에서 사실상 완패한 게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대선 경선전에 들어서도 문 전 대표 진영에서 최근 나온 '부산 대통령' 발언, 문 전 대표 자신의 '전두환 표창장' 발언이 호남의 '반문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이 분열된 것도 변수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은 DJ라는 강력한 호남의 맹주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었지만, 현재 호남의 민심은 문 전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태다. 2002년 당시 대세는 이인제 후보이고 동교동계의 대표인 한화갑 전 대표의 위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DJ와 동교동계는 측면에서 '본선 경쟁력'이 높은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고 있었다. 문 전 대표는 그 정도의 단합된 호남의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이번에 광주 경선에서 '역선택' 가능성이 계속 거론되는 이유다.

'어게인 2002 광주의 기적'을 내건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최근 광주를 찾아 노점상의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② 문재인 측 "호남은 어차피 '될 사람' 밀어주게 돼있어"

문 전 대표 측은 송영길 의원이나 DJ의 셋째 아들 김홍걸 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등을 필두로 호남 출신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 호남에서도 다른 후보들보다 압도적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부인이 반년째 주말마다 광주에서 살다시피할 정도로 민심 얻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호남은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믿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경선에서도 문 전 대표는 이 '호남 심리' 덕을 본 게 사실이다. 호남 연고도 더 강하고 조직력에서 우세였던 손학규 전 대표를 누르고, 노무현의 핵심 참모였던 데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문 전 대표가 승리했었다. 당시 모바일 투표 도입으로 일반 여론이 많이 반영된 덕이었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대표가 본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맞붙을 경우 선명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현재 호남 지역 경선 여론조사 결과에선 문 전 대표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문 후보가 50%대의 지지율을, 안·이 후보가 20% 안팎의 지지율을 각각 보이고 있어 격차가 매우 크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경선 직전에도 이인제 후보와 같은 30%대로 거의 대등한 승부를 펼치고 있던 것과는 큰 차이다. '역전극'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최근 광주 송정역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