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매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ㅣ푸른숲ㅣ368쪽ㅣ1만5000원

어미라고 새끼를 끝까지 사랑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건강했던 아들이 열두 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앓기 시작했다. 몸을 가누기 어려워하더니 인지능력마저 떨어졌다. 의료진은 식물인간이 됐다고 했다. 그 아들을 5년 넘게 바라지하는 사이 다른 두 아이의 성격도 어두워졌다. 초조해진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한탄했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네가 죽어야 해!" 불행히도 이때 아들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몸을 가누지 못해 의사 표시를 못 할 뿐. 삶과 죽음 어느 쪽 길도 자유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던 아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온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바라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식물인간이 되기 전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 그는 감금증후군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으면서 의식은 멀쩡하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9년을 견뎠다.

이 책은 병을 앓던 큰아들 마틴 피스토리우스(42)가 상태가 호전되고서 풀어낸 자신의 경험담이다. 원제는 '유령 소년'(Ghost Boy).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은커녕 몸짓조차도 할 수 없던 '유령' 시절부터, 사회로 돌아와 직장을 얻고 아내와 결혼하기까지 이야기를 담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그는 12세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4년 뒤 기적적으로 의식은 회복했지만 몸은 그대로. 의료진도 부모도 그가 병을 앓기 전 인지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5세가 되기까지 꼬박 9년 동안 그는 집과 IQ 30 미만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 돌봄시설을 오가며 '자신의 몸 안에 갇힌 채로' 살았다.

현대 의학은 그를 100만명 중 1명꼴로 앓는다는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 환자로 본다. 외관은 혼수상태 환자와 같지만 의식은 정상인 상태이다. 프랑스 패션전문지 '엘르'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서 왼쪽 눈꺼풀로 의사소통을 해낸다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2008)와 닮은 상황. 그러나 피스토리우스가 빠진 구덩이는 더 깊었다.

'차라리 의식을 찾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 같은 생활이었다. 돌봄시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볕 그림자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집에 돌아갈 시간만 가늠했다. 간병인들은 그를 화분에 담긴 식물처럼 다뤘다. 때로는 질이 나쁜 간병인이 그를 신체적·성적으로 학대하기도 했다. 어머니마저 한때 포기했던 아이, 생판 남들은 더 무심하거나 잔혹했다.

절망, 공포,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절망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신을 학대했던 돌봄시설에서 영원히 살게 될 거라는 공포, 그리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외로움. 그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눈앞에서 수없이 목격하고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늘 최선을 다해준 아버지와 그를 인간으로 대우해준 몇몇 간병인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어머니도 용서했다. "나는 오래전에 엄마의 과오를 용서했다. 이제 엄마의 얼굴을 보면 엄마가 스스로를 용서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랬기를 바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마틴 피스토리우스(왼쪽)와 아내 조애나.

희망의 끈을 붙잡고 버틴 덕이었을까. 사려 깊은 간병인 '버나'가 등장하면서 피스토리우스의 삶은 급변한다. 버나는 그가 눈빛으로 의사를 전달하려 하는 것 같다며 전문기관에서 인지검사를 다시 받아보라고 부모에게 권했다. 9년 만에 그는 정상적 인지능력을 갖췄다는 테스트 결과를 받아든다. 신체 마비도 호전됐다. 머리와 상체를 일부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사회로 돌아온다. 전동휠체어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고, 컴퓨터 음성 프로그램 없이는 말 한마디 못 하지만 병원에서 사무 보조로, 인터넷 웹 디자이너로 일한다. 연애하다 좌절도 하고, 사회생활에서 뒤처질까 전전긍긍하는 청년이다. 이제 그는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은 스스로 먹을 수 있지만,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할 때는 도움이 필요한' 정도로 상태를 회복했다. 병마와 다투던 경험담을 소재로 TED에서 한 강연은 조회 수 190만을 넘겼다. 우리는 '인간 승리' '사람이 희망이다' 같은 말을 쉽게 입에 올린다. 이 책은 그 말을 쓸 자격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