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못하고 있는 외국산 치약과 마우스워시 제품들. 요즘 소비자들은 이들 제품을 대부분 직구로 구입한다.

"몇몇 주요 성분이 식약처에서 허용하는 용량을 초과했네요. 동물실험을 반드시 거치셔야 합니다."

외국 제품을 수입·유통하는 A사 대표 L모(50)씨는 최근 외국에서 잘 팔리는 치약 몇 종을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문의를 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잘 팔리는 치약들을 정식 수입하기 위해 오랫동안 알아본 L씨였다. 식약처 담당자는 기존에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치약에 함유되는 성분 목록표를 보여주면서 “이들 성분 중 하나라도 수입하고자 하는 치약에 식약처가 허용하는 양만큼만 함유가 돼 있으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런 성분이 아닌 새로운 물질을 함유하고 있거나 기준치를 벗어나면 아예 독성 검사를 새로 해야 하는데, 반드시 쥐나 토끼 등를 이용한 동물 검사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L씨는 식약처가 내준 성분표를 훑어봤다. 플루오르화석·염화나트륨·초산토코페롤·염산피리독신·알란토인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L씨가 수입하고자 하는 치약은 이런 성분이 아닌 탄산칼슘과 이산화규소, 베이킹소다 등으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이산화규소 함량이었다. 함량이 식약처 기준을 초과해 동물실험(안정성 실험)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L씨는 좌절했다. 그는 평소 동물 실험 반대자이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 제품만을 골라 수입해 왔기 때문이다. L씨는 “이미 이 치약은 여러 나라에서 수년 동안 사용되면서 그 안전성을 검증 받은 제품인데 이에 대한 설명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이미 허가를 받은 성분이 하나만이라도 함유돼 있으면 더 이상의 안정성·독성검사 없이 제품이 통과된다는 사실이 무척 황당했다"고 했다. L씨는 또한 "기존에 허가받은 성분이 없거나 허용치를 넘기면 꼭 동물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기준도 무척 아쉽다. 과학이 워낙 발달해서 굳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독성검사를 할 수 있고, 외국에선 이미 동물실험을 다른 실험으로 대체하는 추세인데 한국만 글로벌 시대에 너무 뒤처져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작년 9월 국내 일부 치약 제품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외국에서 생산·판매되는 치약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해외 치약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7%나 늘었다. 직구도 크게 늘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화장품 직구 건수(1813)에 비해 2016년 화장품 직구 건수(2429)는 34%나 증가했다. 관세청 측은 “우리나라에선 치약이 의약외품이지만 외국 대부분의 나라에선 화장품으로 분류된다. 최근 치약 직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병행수입·직구·면세 쇼핑 등을 통해 외국 치약을 찾는 소비자들은 급증하는데, 정작 국내 정식 유통은 요원하다. 식약처의 성분 검사 기준을 통과하려면 동물실험이라는 장벽을 만나야 한다는 점, 국내에선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있다 보니 회사에 정식 등록된 약사 등이 없으면 함부로 제품을 수입할 수 없다는 점 등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화장품 회사 ‘러쉬’의 경우는 전 세계 55개국에서 고체 치약을 팔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판매를 포기했다. 호주 천연 화장품 회사로 유명한 ‘이솝’ 역시 마우스워시와 치약을 21개국에 팔지만 우리나라에선 팔지 못하고 있다. 미국 화장품 회사 ‘닥터 브로너스’의 유기농 성분 치약 역시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선 큰 인기지만 한국에는 못 들어오고 있다. 영국 ‘유지몰’, 프랑스 ‘불리’ 치약도 국내에 정식 수입 경로를 알아보다 식약처 규제에 두 손 든 경우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장품 평론가는 "낡은 규제 탓에 국내 소비자의 선택권만 좁아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식약처 측은 "국내에서 치약이 의약외품으로 허가돼 판매되는 만큼 국민을 위한 안전 기준이 외국보다 더 높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