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들이 영어, 수학 상품을 파는 비즈니스맨으로 전락했다. 인기를 더 얻기 위해 저속한 코미디언이 되어가는 느낌까지 풍긴다." 오늘의 사교육 시장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1966년 봄, 입시 전문 강사들의 세계를 취재한 어느 대학신문 기자가 일간지에 기고한 비판의 글이다. 1964년 대학별 본고사의 부활 이후, 학원가의 경쟁이 더 뜨거워지면서 인기에 영합하는 엔터테인먼트 같은 강의의 시대가 펼쳐진다. 당시의 풍경을 신문 지면은 이렇게 전한다. "실력이 곧 강사의 인기의 척도는 될 수 없는 것. 인기 강사는 수학 공식을 설명할 때도 '마빡과 이마는 같다'는 식의 묘한 표현과 기발한 제스처, 악센트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음담패설까지 약간씩 섞어야 한다. 그래야 인기가 높아지고 강의 시간이 늘고 최고 보수를 받을 수 있다."(경향신문 1966년 4월 5일 자) 일류교 문제를 신통하게 잘 맞히는 강사는 '신통한'으로 개명하는 등, 인기 강사가 연예인처럼 애칭을 내거는 일도 이때 붐을 이뤘다.

1970년대 학원가에서 실력과 입담을 겸비해 학생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특A급 강사’들에게만 학생이 몰리는 풍조를 삽화를 곁들여 비판한 기사(조선일보 1977년 1월 21일 자).

학원들의 황금시대에 강사들은 실력이나 달변만으론 인기를 붙들기 어려웠다. 큰 재미를 줘야 했다. 유머의 구사는 필수였다. 1977년 어느 3수생은 유머 구사로 인기를 누리던 어느 강사의 영어 강의를 듣다가 정말로 '웃기는' 일을 겪었다. 이 강사가 어떤 우스갯소리를 막 꺼냈을 때, 그 이야기를 재수 시절 들었던 3수생이 한 박자 먼저 웃음을 킥킥 터뜨리자, 강사가 "작년에 들어서 안다고 미리 웃는 건 영업 방해"라며 화를 내고는 우스개를 중단한 것이다.

학원 강사들이 자극적 표현이나 농담 늘어놓기 경쟁을 벌이며 강의가 연성화(軟性化)하자 일부 '진지한' 학생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1976년 초 한 재수생은 "인기를 모으려고 저질 농담을 늘어놓는 강사들이 역겹게 느껴진다"고 언론에 의견을 밝혔다. 1967년 8월엔 서울 종로 학원가에서 재미있게 말하려는 강사와 차분한 강의를 원하는 학생 간의 끔찍한 충돌이 일어났다. 영어 강사가 수업 도중 "여자가 해산할 때의 고통…" 운운하며 농담을 시작하자 18세 남학생이 참다 못해 "공부합시다"라고 고함을 치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격분한 강사가 학생에게 달려가 주먹을 휘두른 끝에 학생이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빚어졌다.

그런 시절로부터 꼭 50년이 흐른 지금, 상당수 사교육 강사들은 인기를 얻으려고 거의 엔터테이너가 되어간다. 유머구사법 강의를 듣기도 한다. 어느 전문가가 정리했다는 '남을 웃기는 10계명' 중에서도 ▲뻥튀겨라 ▲허풍을 떨어라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라 같은 원칙들을 실제로 구사하는 강사도 꽤 있다.

최근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 당시 룸살롱에서 낮술을 먹었다"는 식으로 강의해 논란에 휩싸인 어느 스타 강사도, 재미있게 하려다 무리수를 둔 측면이 강해 보인다. 그 강사가 작정하고 웃겨 보겠다고 만든 또다른 동영상 강의를 보면 "모나리자가 얼굴이 누렇게 뜬 건 변비가 너무 심해 똥을 못 싸서 독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식의 유치한 폭소탄을 5분에 10차례 이상 날린다. 가르친다는 행위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는 강의 방식이 득세하는 건 재미에 열광하는 세대들의 무비판적 환호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흥미 위주로 수업하면 싫다"고 'NO'를 밝혔던 50년 전 학원생들의 목소리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