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수 전 주일(駐日) 대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한국인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아베 총리의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오랫동안 장기 불황에 시달렸다는 것은 이제 지난 얘기다. 아베노믹스가 완전한 성공은 아니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주일 대사 재임 시절, 일본 경제가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오르고 취업난이 사라지는 걸 생생히 봤다. 오히려 일손이 부족해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인 취업 준비생들에게 눈을 돌릴 정도였다. 대사관이 나서서 일본 기업과 한국 청년들을 연결해주는 행사도 여러 번 했다. 국가 전체가 침체된 분위기였던 1990~2000년대와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정치적 안정'이 있다. 경제계와 일반 국민이 정부와 협력해 이룬 성과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아베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불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엔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자민당에 필적할 야당이 없다는 점도 아베 총리가 폭넓게 지지받는 이유 중 하나다.

대사 임무를 마치고 귀임한 뒤, 지금 우리 모습이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하던 무렵과 닮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그때 일본은 소비가 얼어붙었다. 국민들 호주머니에 소비할 돈도 없고, 있다 해도 미래가 불안하니까 지갑을 닫았다. 기업도 투자를 유보했다. 일본 골프장과 백화점에 손님이 끊기고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고통스러워했다. 지금 우리가 같은 일을 겪고 있다.

올해 여든 된 사람으로서 곰곰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면 한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결국 국민이 합심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정치적 의견은 다를지언정 추구하는 '목표'는 같아야 한다.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국민도 우리나라가 더 잘사는 나라, 더 편안한 나라가 돼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경험하고 있다. 이게 해소돼야 기업이 투자할 수 있다. 기업이 잘돼야 취업이 살아난다. 다른 건 몰라도 '불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는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