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중소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2년 전, 생산 라인 2조 2교대 근무를 3조 3교대로 바꿔 1인당 근로시간을 주 60시간에서 46시간으로 줄였다. 직원 평균 임금은 7%가량 줄었지만, 신규 직원을 10% 더 뽑으면서 직원 수는 440명으로 늘었다. A사 관계자는 "처음에 월급 깎이는 게 마뜩지 않았던 근로자들도 주말 근무가 없어지면서 쉴 시간이 늘어나자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신규 일자리 몇 개 생겨나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신규 고용 창출' 정책이 다시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한국노총은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 60만 개를 창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대선 주자들도 일찌감치 주요 일자리 공약으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내놓았다. 현행 주당 68시간까지 허용하는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해 수십만 개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이를 통해 약 20만 개, 이재명 성남시장은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 관행은 그간 신규 고용을 막는 장애물로 꼽혀왔다. 연간 근로시간(2015년 기준 2113시간)이 OECD 평균(1766시간)보다 20%가량 많다. 장시간 근로가 가능했던 것은 노사 간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사람을 새로 뽑는 것보다 기존 숙련 인력에게 연장 근로를 시키는 게 비용이 적게 들고, 근로자 측은 수당 등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를 의무화하면 현재보다 33만~59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위원은 "주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근로자들의 초과 근로시간이 모두 신규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가정하에 분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낸 국가도 있다. 1980년대 초반 실업률이 11%까지 치솟았던 네덜란드는 근로시간을 5% 단축해 8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실업률도 3% 초반까지 떨어뜨렸다.

"고용 창출되려면 월급 감소 감내해야"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신규 고용 창출'이 이뤄지려면 "노사 합의 등을 통한 임금 감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사정위는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면 각종 수당이 감소하면서 근로자 임금이 평균 13.1% 줄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대선 후보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축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만 말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임금을 최대한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임금 후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아자동차 노조는 야간 근로시간을 1시간 줄이는 만큼 임금을 줄이는 방식을 조합원 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경총이 한 설문조사에선 전체의 69.2%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를 삭감하면 노사관계 악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 감소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는 그대로여서 당연히 사람을 새로 뽑을 여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노사정이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