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영문(52)이 새로 낸 소설책 제목은 '오리무중에 이르다'이다. 내용 소개가 별 의미가 없을 것인데, 제목이 내용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고자 하는 말이 도통 오리무중이지만, 그 오리무중에 이르고 나면 결국 그가 말하려는 '할 말 없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단편집으로 치면 9년, 소설책으로는 6년 만이다.

"멍하니 지냈다. 작년 여름 소설가 은희경씨가 '이제 소설집 낼 때 안 됐냐'고 묻기에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그간 발표한 게 6편 있기에 추려서 4편을 묶었다."

12일 서울 창전동 자택에서 만난 정영문. 그의 말은 느리고 길지만, 다 듣고 나면 웃게 되거나 쓸쓸해진다는 점에서 그의 글과 같다.

[소설가 정영문은...]

첫 수록작 '개의 귀'는 2014년 발표한 단편을 중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한 남자가 아는 여자 집에 가서 몰티즈의 귀를 접었다 펴며 발생하는 생각의 연쇄. '아무런 맥락도 없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얘기를 하는, 그래서 아무것도 말하는 것이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말하는… 그럼에도 다른 삶은 꿈꾸고 싶지 않은… 이상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소설은 대개 이런 식이다.

―왜 이렇게 쓰나?

"난 지독한 회의주의자다.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다. 결론을 낼 수가 없기에 문장이 하나의 마침표로 분명히 끝나지 않는다. 소설 제목에도 '어떤'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명사 앞에 붙어 유보적인 느낌을 부여하지 않나."

그러니 정영문 소설은 의식적 중얼거림이라 할 수 있다. 기승전결이나 하나의 소설적 사건도 없다. 표제작과 '유형지 X에서' '어떤 불능 상태' 역시 대동소이하다. 무의미해보이는 하루의 일과가 나열되고, 생각이 파생하며, 그걸 중얼거릴 뿐. 그는 과거 "사뮈엘 베케트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책에 '작가의 말'도 '해설'도 없다.

"내 소설은 '할 말 없음'에 대한 글이다. 군더더기로 이뤄졌는데, 거기 군더더기를 덧붙일 이유가 없다."

―할 말 없으면 그냥 안 쓰면 되지 않나?

"사실 그게 정답이다. 근데 맘대로 안 된다. 저주받은 것처럼 늘 글쓰기를 생각한다."

이 '저주받은' 소설가는 1996년 데뷔 이래 제대로 된 조명도 상복도 없었다. 그러다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가 2012년 동인문학상 등 문학상 3개를 싹쓸이했다. 국내 최초였다.

―수상이 작풍에 영향을 끼쳤나?

"세계의 무의미 탐구라는 기본 의식에 변화는 없다. 다만 조금 경쾌해진 것 같기도 하고."

―영문학 번역서 50여권을 냈다. 지금도 번역 작업하나?

"너무 지겹다. 건강도 해쳤고. 요즘은 전혀 안 한다. 아예 글을 안 쓰고 있다."

―회의주의 때문인가.

"전혀 다른 형식의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그 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