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주위는 마치 요새를 방불케 했다. 경찰은 360여 대의 버스를 동원해 헌재 청사 둘레에 길게 차벽(車壁)을 쳤다. 헌재에서 남쪽 방향으로 약 100m 떨어진 안국역 사거리도 차벽으로 막았다. 경찰은 차벽 주위로 120개 중대(약 9600명)를 배치해 시위대의 헌재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윤보선길과 북촌로 등 헌재 주변의 이면도로에도 경찰들이 배치돼 통행객을 불심 검문했다. 격앙된 탄핵 찬반 집회 참가자들의 충돌이나 헌재 난입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회사원 이준민(33)씨는 "헌재 근처에 있는 단골집에 점심을 먹으려고 나왔다가 경찰에 막혀 못 갔다"며 "입사 후 이렇게 경비가 삼엄한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헌재 앞에서 커피집을 운영하는 정모(44)씨는 "평소엔 1인 시위와 기자회견 때문에 헌재 앞이 북적거렸는데 오늘은 경찰이 골목까지 통제해 한산했다"고 말했다.

왼쪽은 탄핵 반대, 오른쪽은 탄핵 찬성 - 9일 오후 헌법재판소 인근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반대 진영의 집회 장소를 안내하는 표지가 붙어 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갈래 화살표가 분열된 현 대한민국의 민심을 상징하는 듯하다.

[헌재 탄핵심판 카운트다운]

이날 탄핵 찬반 진영은 모두 헌재를 목표로 삼았다.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선고일이 결정된 지난 8일부터 이틀째 헌재 남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수운회관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몇몇 참가자는 텐트를 치고 철야 농성을 했다. 탄기국이 헌재 청사 방향으로 설치한 대형 스피커에서는 '멸공의 횃불' 같은 군가(軍歌)가 나왔다. 태극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전우여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는 가사를 따라 불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날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오후에도 계속 늘어났다. 안국역 남쪽 출입구부터 낙원동 악기상가 앞까지 참가자들이 가득 들어찼다. 탄기국은 이날 최소 12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탄핵에 찬성하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1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참가자들은 1시간가량 집회를 한 뒤 "헌재는 탄핵하라" "촛불이 승리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헌재 인근 안국역까지 행진했다.

경찰의 봉쇄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헌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만일의 폭력 사태에 대비해 헌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시민에 대해 3~4명씩의 경찰을 붙여 경비했다.

탄핵 찬반 진영은 모두 선고일인 10일에도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탄기국은 10일 오전 10시부터 수운회관 앞에서, 퇴진행동은 오전 9시부터 헌재 주변에서 집회를 하기로 했다. 양측은 선고 이후의 세부적인 집회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선고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박사모 회장)은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되면 '국민저항본부'를 통해 국민 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퇴진행동 공동대변인도 "만약 헌법재판소가 다수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탄핵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할 경우 청와대 방면 도심 행진을 포함한 대규모 집회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이날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앞으로 72시간 동안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해달라"며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 뒤 이에 불복하는 단체들의 차량 돌진과 분신 등 과격 행위는 가용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