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숟가락, 접시, 항아리, 쇠낫과 손칼이 진열장마다 층층이 쌓였다. 수장고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장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물건. 고대 마을을 이뤘던 건물과 우물, 도로와 가마 등 서민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국립대구박물관(관장 권상열)에서 열리는 '고대 마을, 시지(時至)' 특별전이 전시의 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려한 금관도, 눈에 띄는 국보나 보물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썼던 유물 1만여 점이 켜켜이 쌓여 있을 뿐인데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구 시지 유적은 신매동과 노변동, 욱수동, 경산 옥산동과 중산동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유적이다. 총 면적 21.5㎢에 이른다.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총 55개 유적에서 4만점 넘는 유물이 출토됐다.

대구 노변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들이 진열장 층층이 쌓여 있다. 굽다리 접시, 항아리, 뚜껑, 그릇 받침 등 이 진열장 유물만 1000여 점에 달한다.

장용준 학예연구실장은 "시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국가 귀속돼 박물관 수장고에서 관리해 왔지만 한번도 본격 전시된 적이 없었다"며 "당시 서민들의 자취를 '전시형 수장고' 방식으로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전시장을 돌고 나면 구석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백성들 생활상이 자연스레 읽힌다. 고려·조선 시대 청동 숟가락 200여 점이 진열장 하나를 채웠는데 젓가락은 12점뿐인 것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국 고대 숟가락 연구'의 저자인 정의도 한국문물연구원장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수저가 같이 출토되는 사례가 20%가 안 된다. 숟가락 하나로 밥을 먹는 문화였고 젓가락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게 18세기 후반"이라고 했다.

삼국 시대 부장(副葬) 풍습도 엿볼 수 있다. 장용준 실장은 "시지 지역을 포함해 4~6세기 신라 무덤은 서민이라도 부장품을 수백점까지 넣어 장례를 성대하게 치른 후장(厚葬)인 반면, 같은 시기 백제 무덤인 천안 용원리 유적, 청주 신봉동 유적 등은 지배계층의 무덤임에도 부장품을 많이 넣지 않은 박장(薄葬)이다. 천안 용원리 유적은 150기 무덤에서 500여 점만 출토됐을 정도"라고 했다. 출토 유물을 무덤 속 상태 그대로 재현한 2전시실은 4월 2일까지, 시대별로 유물을 소개하는 1전시실은 8월 6일까지 이어진다. (053)768-6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