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사진〉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2일(현지 시각) 한국 경제 위기론과 관련해 "한국이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IMF에서 총재와 부총재에 이은 서열 3위 인사로, 한국인으론 최고위직이다.

그는 워싱턴DC IMF 본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제조업 등 기존 산업에 의존하는 한국의 1970~80년대 성장 모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한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면서 "이제 중국의 성장 둔화로 '중국 특수'가 사라지면서 10여년 넘게 미뤄뒀던 질적(質的) 구조조정의 시기가 왔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겪는 어려움은 대통령 탄핵을 포함한 정치 불안,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 같은 지정학적 불안정 때문에 갑자기 닥친 게 아니라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집착해 진화(進化)의 기회를 놓친 데서 왔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에 가장 임박한 위협에 대해 "한국 대기업 대부분은 수출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2~3세 상속 문제까지 걸려 있다"며 "안 그래도 힘든 시장 상황에 지배구조 문제가 맞물리면서 대기업 주도의 성장 모형이 얼마나 지속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 국장은 "한국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올라 연 5~7% 성장을 할 수는 없지만, 닥쳐올 고령화 사회를 버티려면 향후 10년은 3%대의 꾸준한 성장을 해야 한다"며 "이대로 가면 일본의 길을 따라 저성장 구조로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조 개혁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이 국장은 "작은 구조 개혁이라도 하려면 정치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며 "탄핵 정국이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서로 다른 이견을 조율하고 정치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본은 1980년대 벌어놓은 돈을 해외 자산에 투자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교육에 투자했다"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한국 인재들이 공무원·대기업 취직만 꿈꾸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서비스·지식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사드를 둘러싼 지정학적 불안정에 대해서는 "중국은 통상으로 죄고, 미국은 안보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피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드와 탄핵으로 인한) 위기감은 구조 개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지혜를 모아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