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주년 3·1절인 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거대한 'ㄷ' 자 모양의 차벽(車壁)이 만들어졌다. 경찰은 610여대의 버스를 동원해 서울을 대표하는 광화문 광장을 둘러쌌다. 이 차벽 바깥쪽에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측의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반대로 차벽 안쪽 광화문 광장에선 박 대통령 탄핵·구속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다. 차벽 바깥의 태극기 집회 측이 "특검을 구속하라"고 외치면, 차벽 안쪽의 촛불 측은 "박 대통령부터 구속하라"고 맞받았다.

차벽으로 분리된 광화문 - 제98주년 3·1절을 맞은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는 두 개로 분열된 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 아래쪽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며 태극기를 든 시민들로 가득찼다. 차벽 건너편에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벌였다.

이날은 두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외쳤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무기처럼 상대에게 휘두르며 싸움을 거는 이도 있었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도 두 패로 갈려 집회에 참여했다. 김진태·윤상현 등 자유한국당 친박(親朴) 의원들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고,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추미애 대표 등은 촛불 집회에 나왔다.

이날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주최한 15차 태극기 집회에는 역대 최대 인원이 참가했다. 탄기국은 "500만명이 왔다"고 주장했다. 본집회가 열린 세종대로 사거리뿐 아니라 세종문화회관 앞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청계천광장, 세종로공원 등 광화문 일대에 총 62개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광화문광장에서 연 18차 촛불 집회에는 30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최 측이 주장했다.

양쪽 모두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했지만 3시간 넘는 시차를 두고 행진이 이뤄진 데다 코스가 겹치지 않아서 대형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탄기국 측은 서울 안국동의 헌법재판소 방면으로도 행진할 계획이었지만, 경찰은 재판관들의 신변 안전과 경호 등의 이유를 들어 불허했다. 퇴진행동 측도 헌재 방면으로 행진하지 않았다. 태극기 집회는 오후 7시쯤 해산했고, 촛불 집회는 8시쯤 공식 종료됐다.

양측의 집회가 이어진 오후 2시부터 6시간 동안 세종로와 태평로, 종로, 을지로 등 광화문 일대 교통이 전면 통제됐다. 넉 달 넘게 주말이면 서울 도심은 이런 대규모 집회로 사실상 마비 상태다.

양쪽 참가자 가운데 일부는 마주칠 때마다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였다. 군중을 자극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태극기 집회에선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들을 척살하자" "정국에 따라 폭력을 써야 할 때는 먼저 피를 흘리자" 등의 발언이 나왔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도 "탄핵이 기각되면 헌재에 쳐들어가자"고 했고, 일부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부지를 내준 롯데는 망할 것" 같은 구호를 외쳤다.

경찰 차벽으로 둘러싸인 광화문광장은 고립된 섬처럼 보였다. 경찰은 광화문 광장 북단(경복궁 방면)을 제외한 3면을 차벽으로 둘렀다. 이에 따라 차벽을 사이에 두고 태극기 집회가 촛불 집회를 에워싼 듯한 모습이었다.

상당수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차벽으로 막힌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는 데 혼란을 겪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박근혜 탄핵'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다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양측은 차벽 안팎에서 "저것들 아직도 정신 못 차린다" "이리로 넘어와. 가만 안 둔다"라며 언쟁을 벌였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인 고등학생 최모(18)군은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혼내주겠다"며 차벽을 기어오르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양측이 경쟁하듯 스피커 볼륨을 높이는 바람에 집회 현장에선 옆 사람과 대화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 시민은 "가까운 거리에서 양쪽 진영이 확성기에 대고 고함을 지르듯 큰소리를 내니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