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을 하루 앞둔 26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휴일임에도 출근해 막판 점검 작업을 벌였다.

이날 오후 1시 20분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차량이 헌재 청사 1층 출입문 앞에 정차하자 검정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 2명이 차량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이들이 주위를 살핀 뒤 굳은 표정의 이 대행이 차에서 내려 종종걸음으로 청사로 들어갔다. 이진성·안창호·서기석 재판관도 이날 아무 말 없이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무실로 올라갔다.

헌재 연구관들과 사무처 직원들도 출근해 재판관들의 집무실이 있는 헌재 건물 3~4층을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헌재 관계자는 "3~4층 복도가 너무 조용해서 걸을 때 나도 모르게 뒤꿈치를 들게 됐다"며 "폭풍 전야(前夜)가 이런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헌재 정문 주변의 경비 인력을 평소의 2배인 2개 중대(약 140명)로 늘렸다. 경찰관들이 정문 앞에 일렬로 늘어서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뒤 출입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야 길을 터줬다.

국회 측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날 각각 모임을 갖고 80여 일에 걸친 탄핵심판 법리(法理) 전쟁의 마지막 승부가 될 최종 변론에 대비했다. 소추위원단 관계자는 "최종 변론에서 낭독할 원고를 가다듬고 누가 어떤 부분을 맡을지 역할 분담을 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도 이날 모처에서 밤늦게까지 대책을 숙의했다고 한다. 변호인단 가운데 일부는 25일 서울 시청광장과 대한문 주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김평우 변호사는 연단에 올라 "(헌재 결정에)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나. 우리가 노예인가"라고 했다. 조원룡 변호사는 "축구할 때 심판(헌재)이 편파 판정을 하면 승복해야 하느냐, 아니면 경기를 그만둬야 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이날 저녁 무렵 기자들에게 "박 대통령이 27일 최종 변론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며, 입장을 담은 서면을 제출하겠다는 뜻을 헌재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최종 변론에) 출석하면 지금 헌재가 정해 둔 (불공정한) 탄핵심판 절차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의견이 변호인단 내부에서 제기됐다"고 했다.

27일 오후 2시 시작되는 최종 변론은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해 탄핵심판을 헌재에 청구한 국회 측(청구인 측)이 먼저 '대통령이 파면(罷免)되어야 하는 이유'를 헌재의 재판관 8인에게 설명하게 된다. 뒤이어 박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며 반론을 펴게 된다. 형사 재판 결심(結審)에서 검찰 측이 먼저 피고인을 처벌해야 하는 이유와 구형을 한 뒤, 변호인이 변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헌재는 앞서 국회 측과 대통령 변호인단 측에 "최종 의견 진술 시간을 각각 30분씩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이뤄져 왔던 만큼 훨씬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법률 위반 쟁점이 '선거법 위반 여부' 한 가지였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양측이 각각 1시간 30분가량씩을 써 최종 변론이 끝나는 데까지 3시간 12분이나 걸렸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가 '최순실 국정 개입' '대기업 뇌물 수수' 등 13가지나 되고, 재판 과정에서 헌재가 이를 다시 축약·정리한 쟁점도 '대통령 권한남용'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등 5가지에 달한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9인이 아닌 재판관 8인 체제에서 내린 헌재의 선고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도 펼 것으로 보인다. 손범규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의 후임이 올 때까지 탄핵심판은 중단돼야 한다"며 "헌재가 8인 체제에서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재심(再審) 사유"라고 했다. 이에 따라 27일 최종 변론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는 "최종 변론일이 다시 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대통령 변호인단의 변론이 길어지더라도 가급적 제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종 변론은 공식적으로는 선고를 앞둔 사실상의 마지막 재판 절차인 만큼 '공정성'과 관련한 조금의 논란이나 시빗거리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