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은 4개 장단을 해보자고 약속했는데 신나게 연주하다가 까먹고 2개밖에 안 해부렀네."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 올해 희수(喜壽·77세)를 맞은 김일구 아쟁 명인이 관객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쟁과 대금, 장구와 징이 합세한 '시나위' 무대가 막 끝난 뒤였다. 박수가 쏟아지는데도 멀뚱히 앉아 있던 명인의 '실토'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구를 맡은 조용복씨가 "엇모리부터 다시 갈까요?" 묻자 명인이 "그리하세" 했다.

자연 음향 공연장으로 변신한 우면당 재개관을 기념하는 열흘간의 공연이 25일 끝났다. 기악 명인들이 출연한 이날 무대에서 '풍류방' 같은 공연장의 진가가 드러났다. 정악을 대표해 정재국(피리)·이재화(거문고) 명인이 영산회상을, 민속악을 대표해 김일구(아쟁), 원장현(대금) 명인이 산조를 들려줬다.

지난 18일 오후 국립국악원 우면당 재개관 기념 창작악단 공연에 앞서 연주자들이 피리 중주곡 ‘갈잎소리’를 리허설하고 있다.

마이크와 스피커 등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아 국악기의 미세한 떨림이 왜곡 없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악보 없이 즉흥 연주하는 시나위에서 관객의 흥이 최고조에 달했다. 곳곳에서 '얼쑤' '좋다' 같은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원장현 명인은 "연주자 입장에서도 내 소리가 또렷이 잘 들렸다"며 "40년 동안 김일구 선생님과 시나위를 공연했지만 한 번도 같은 가락을 연주한 적이 없다"고 했다.

15일부터 18일까지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 등 국립국악원의 4개 예술단이 대표 레퍼토리를 선보인 데 이어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21일), 안숙선·이동규 등 성악 명인(22일), 김해시립가야금연주단 등 실내악 단체(23일)가 무대에 올랐다. 관건은 국악 관현악. 40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는 국악 관현악단이 악기 간 음량 차이를 마이크 없이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일단은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합주 부분에서 가야금 소리가 가끔 파묻힌 걸 제외하면 대체로 관현악이 조화를 이뤘고 타악기 주자들이 힘을 빼고 절제하는 모습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