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일본 삿포로 쓰기사무체육관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얼음판에 줄지어 선 짙은 청색 유니폼의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선수도 있었고, 동료에 안겨 흐느끼는 선수도 있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18년 만에 중국을 꺾은 날의 광경이었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이날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4차전에서 중국과 정규 60분(2―2), 연장 5분 혈투(0―0)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슛 아웃(Shoot Out)에 돌입한 끝에 박종아(21)의 결승 골로 3대2로 승리했다. 슛 아웃은 공격수가 드리블하면서 상대 골키퍼와 일대일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축구의 승부차기와 비슷하다. 한국은 9번째 슛 아웃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가 박종아가 10번째 슛 아웃에서 중국 네트를 뒤흔들며 피 말리는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수십 차례 선방으로 승리를 이끈 골키퍼 신소정(27)은 "중국을 이겨 우리 가능성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자고 했다. 그 희망이 이뤄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은 1999년 강릉 동계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이번 경기까지 공식 대회 7경기에서 중국을 상대로 2골을 넣고 90골을 내줬다. 한국 진영에 스케이트 날이 만든 얼음 가루가 쌓이는 동안, 상대 진영 얼음판은 반들반들했던 게 대부분이었다. 신소정은 "수십 개의 슛을 막다 온몸에 피멍이 들곤 했는데, 이렇게 이기는 날이 찾아왔다"고 감격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선수와 활짝 웃는 선수,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선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선수. 18년 만에 중국을 제압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엔 “결국 해냈다”는 한 생각뿐이었다. 23일 중국전이 끝난 뒤 한 줄로 늘어선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는 불모지나 마찬가지다. 실업팀은커녕 중·고교 팀도 하나 없다. 유소년 클럽에서 취미로 시작해도 중 1·2학년만 되면 대부분 그만둬야 하는 실정이다. 국가대표팀도 대회가 끝나면 부리나케 흩어져서 생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인스턴트 대표팀'이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어도 수입은 하루 6만원인 훈련 수당이 전부. 한 달 120만원으론 생계도 빠듯하니 이걸 직업으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팀을 떠난 선수도 많았다. 국제대회에 22명 엔트리를 채우지 못한 적도 많다.

[중국은 어떤나라?]

'학생 아니면 백수'인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오직 정열로 뭉쳐 있었다. 중국전 승리의 주역인 박종아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아이스하키를 하려고 중학교 때 혼자 서울로 전학 왔다.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발탁돼 캐나다로 유학을 간 그는 지난해 캐나다 여대 1부리그인 새스캐처원대 선수로 뛰고 있다. 유소년 클럽에서 스틱을 잡은 골키퍼 신소정은 국내 대학 재학 도중 뒤늦게 자신의 플레이를 담은 동영상을 보내는 열성 끝에 캐나다 대학팀에 편입했고,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NWHL(미국여자아이스하키리그) 뉴욕 리베터스에 입단했다. 대표팀 최고참인 이규선(33)은 1982년 남자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18세 때 뒤늦게 스틱을 잡아 청춘을 얼음판에 바쳤다. 베테랑 공격수 한수진(30)은 아이스하키 때문에 연세대 음대를 7년 만에야 졸업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분식집에서 만두 빚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클럽팀 생활을 했다. 그는 "피아니스트의 드레스보다 땀내 나는 하키 유니폼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처음엔 오합지졸 같았던 대표팀이지만 평창올림픽 유치 이후 미국인 코치 새러 머레이가 2014년 부임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은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다. 25일 홍콩전과 관계없이 카자흐스탄에 승점에서 밀려 4위가 됐다. 머레이 감독은 "중국전 승리가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며 "평창올림픽에서 절대 후회가 없도록 준비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