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중에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헌재가 국회 편을 들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공격했고 재판부는 "재판부 모욕"이란 말을 세 차례나 했다. 재판이 여러 번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다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해주지 않으면 아스팔트서 대형 불상사가 벌어질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외국 예를 들며 시가전, 내전(內戰)이란 극단적 용어까지 등장했다. 재판이 아니라 거의 싸움 같았다.

이 광경을 보면서 마치 탄핵 심판 결정 이후에 벌어질 사태가 재판정에서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 측 변호인 중엔 명망 높은 법률가가 적지 않다. 이들이 이토록 격앙돼 있는데 주말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 변호인단이 말한 '내전'은 심리적 상태에 관한 한 큰 과장이라고 할 수가 없다. 시위대는 자신들 뜻과 다른 결정이 나오면 승복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누군가 불쏘시개라도 던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기각되면 혁명' 아니면 '탄핵되면 피'가 대립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꼭 들어가야만 하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결단과 정치권의 타협을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가 가열되는 모습에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우회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는 "검토한 바 없고, 들은 바 없고, 논의한 바 없다"고 공식 거부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다.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뜻이다. 야권은 야권대로 '탄핵을 피하려는 꼼수'라고 관련 협상에 응할 뜻이 없다고 한다. 이대로면 탄핵 열차와 반대 열차는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답답한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서는 정치인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이란 이런 때 역할을 하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 대접하고 활동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갈등 조정과 협상은 팽개치고 아스팔트에서 시위대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있다.

이 정부에서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잘못된 대통령의 판단에 '이건 아니다'고 한마디 한 사람이 없었다. 그게 이 정부의 불행이었다. 지금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대통령이나 계파보다 국가를 위에 놓고 고민해 무엇이 나라를 위한 길인지 고언(苦言)을 해야 한다.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그냥 포기해도 될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