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이 김정남 암살 사건의 작전본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22일 현지 북한 대사관 2등 서기관과 북한 고려항공 직원 등 새로운 용의자 신원을 공개하고 북한 측에 이들 조사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관 직원은 쿠알라룸푸르 북한 대사관 안에 은신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는 평양으로 탈출한 북한 공작원 4명의 신병 인도도 요구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간 북한은 각종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다른 나라의 주권과 법은 안중에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도 죽은 사람이 김정남도 아니고 자연사라고 하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와 한국이 짜고 사건을 조작했다'고 했다. 체포된 혐의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말레이시아의 사법 체계를 무시했다.

우리 부총리 등 17명이 살해된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에서도 북한 대사관이 지휘본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얀마 정부는 북과 단교(斷交)했다. 체포된 북 폭파범 중 1명이 전모를 자백했지만 북한은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했다. 이번 사건 역시 아무리 많은 증거가 나와도 북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22일 북과의 외교 관계 단절 여부에 대해 "한 번에 한 단계씩"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단계를 밟아 나가며 북한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단교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말레이시아는 물론 인접한 동남아 국가들도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한다. 북이 동남아를 주요 외교 활동 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언론은 김정남 암살 사건을 "김씨 3대 세습자의 살인범들이 자행한 더럽고, 피비린내 나고, 야만적 범죄"로 규정했다. 아세안 국가 대다수는 북이 외교관이란 탈을 쓰고 동남아를 무대로 탈법, 불법적 행태를 저지르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한다. 쿠알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은 범죄 소굴이나 마찬가지다. 국제사회가 문명국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망설임 없이 저지르는 북에 뼈저린 교훈을 주지 못하면 그들의 범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