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다. 왜 글로벌 최고 혁신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에 거주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지역 정부가 실리콘 밸리를 모방해보았지만 결과는 대부분 미미하다. 인근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덕분일까? 그러나 MIT 중심으로 만들어진 매사추세츠의 루트 128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날씨 덕분? 따뜻하지만 전통 산업 위주인 텍사스 오스틴을 반대 케이스로 들 수 있다. 아니면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자유로운 분위기로 유명한 시애틀이나 덴버는 글로벌 하이테크 허브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아야 한다. 비슷한 조건의 미국 도시들조차도 모방에 실패한 모델을 대한민국 지자체들이 시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회사에 알록달록한 책상을 들여놓고 영어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갑자기 혁신적 생각이 만들어질까?

이스라엘 역시 비슷하다. 우리가 그들의 창업 정신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을까? 최근 이스라엘 '창조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크니온공대 다니엘 바이스 교수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성공은 필연과 우연의 합작품이다.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 사회주의 공동체 노선을 추구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과 치른 1967년 6일전쟁과 1973년 욤키푸르전쟁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서방 국가들이 하루아침에 무기 수출을 중단하자 이스라엘은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해야 했다. 여기에 커다란 역사적 우연이 도와주었다. 바로 소련의 몰락이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유대인 과학자·수학자·공학자 수십만명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자리를 얻지 못한 기술자들은 창업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모방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국가도 비슷하다. 다른 나라의 역사적 필연과 우연은 모방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역시 대한민국만의 우연과 필연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혁신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