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작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촛불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정치인은 제도권 내에서 문제를 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그의 지지층 성향을 따지자면 촛불 쪽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실제 안 전 대표 지지율은 하락을 거쳐 최근엔 10% 안팎에서 정체되고 있다. 그런데도 촛불 집회에 발길을 끊는 선택을 했다. 여전히 경쟁하듯 촛불 시위에 나오는 다른 야권 주자와는 다른 모습이다. 안 전 대표는 "정치인은 소신대로 행동하고 평가받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 안철수'를 다시 보게 만든다.

지난 18일 서울 태극기 집회에서 한 주최 측 대표는 "지금까지는 평화 투쟁을 고수했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촛불 집회에서는 "탄핵이 안 되면 혁명밖에 없다"는 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양쪽 다 헌재가 자신들 뜻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승복하지 않고 무슨 폭동이나 일으킬 듯이 위협하고 있다. 양측의 격앙된 감정이나 기세를 보면 빈말만은 아닌 것 같다. 실현 여부를 떠나서 이런 말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순조로운 대선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고 야권이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약속하는 미국 닉슨 대통령식 정치적 타협을 거론하고 있다. 탄핵 여부가 결정됐을 때의 갈등 격화를 막아보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야권이 이런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고, 다른 쪽은 '조금만 더 가면 정권을 잡는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다. 나라 걱정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 걱정, 선거 걱정하는 사람들만 넘쳐난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이르면 두 달여 뒤에 대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 그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주자들이 주말마다 시위대 속에 서 있다는 것은 기막힌 일이다. 입만 열면 갈등을 부추기고 나라를 갈라놓는다. 시위하다 대통령 된 사람이 경제·안보·외교 동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있겠는가. 정치가(政治家)다운 정치인 한 사람 보기가 이렇게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