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복원 전문가인 이원준 국과수 법의관.

이 남자는 하루 종일 변사체의 머리뼈 모양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위에 뼈 주인의 얼굴을 짐작해 근육과 살을 붙인다. 그러면 그 얼굴이 ‘몽타주’가 돼 경찰의 신원 확인 전단에 인쇄된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알고 있다는 전화가 경찰에 빗발친다. 요즘 정보에 좀 밝다고 하는 전국의 강력계 형사들은 신원 불명 변사체가 발견될 때 이 남자를 찾는다고 한다.

이원준(46)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은 점쟁이는 아니다. 화가나 조각가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과학자에 가깝다. 치과 의사 출신인 이 법의관은 한국인 최초로 ‘얼굴 복원(facial reconstruction)’을 전공해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의대 연구실에 있다가 작년 10월부터 국과수에서 “머리뼈에 얼굴을 입히고” 있다. 3일 그를 서울 신월동 국과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해골 모형이 놓인 탁자와 변사체 몽타주들이 걸린 벽 사이에 앉아 한창 ‘얼굴 입히기’ 작업 중이었다.

작년 12월 인천 갈산동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체의 머리뼈에서 얼굴을 복원해 내는 과정.
이원준 법의관이 복원해 낸 얼굴을 경찰이 변사자 신원 수배 전단에 활용한 모습.

‘얼굴 복원’이란 부패하거나 백골화한 시체의 머리 부분을 가지고 생전의 얼굴 모습을 최대한 정확히 추정해 내는 기술이다. 19세기 빌헬름 히스라는 스위스 해부학자가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머리뼈를 가지고 얼굴을 추정해 그린 것이 시초다.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변사체 신원 확인에 쓰였다. “신원 확인을 곧 DNA 판독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시신이 심하게 부패하면 DNA 검출 자체가 어렵고, DNA가 검출된다고 해도 그것을 맞춰볼 대조군이 없으면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과수나 검찰이 보유한 수형자·구속피의자 등의 DNA 데이터베이스는 불과 십수만명 규모다. 전국민 5000만명의 99% 이상은 변사 시 얼굴 복원 대상자인 셈이다.

사람마다 얼굴 특색이 다 다른데, 어떻게 뼈만 가지고 얼굴 모습을 추정하는 걸까. “물론 얼굴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엔 일반적인 법칙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상 사람의 양미간 가운뎃점의 피부 두께는 인중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 피부 두께의 절반 정도 입니다. 또 한국 남성의 턱모서리점(턱이 귀밑에서 각지게 꺾인 부분) 피부 평균 두께는 약 14.3㎜입니다. 얼굴 각 부분 피부 두께의 표본을 충분히 확보하면, 대략적인 얼굴 모습을 과학적으로 추정해낼 수 있습니다.”

눈확위능선 모양에 따라 눈썹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피부 통계치가 전부는 아니다. ‘형태소’라고 불리는 눈·코·입·눈썹·머리카락 등을 머리뼈 형태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잘 붙여야 한다. 눈확위능선(양 눈 위에 돌출된 뼈 부분)가 어떤 형태로 돼 있느냐에 따라 눈썹의 모양도 수십 가지로 달라진다. “초상을 그려보면 눈매를 살짝 삐치게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람같이 보이잖아요. 그래서 형태소 하나를 결정짓는 데에도 한참을 고민합니다.” 살색의 명도를 결정하기 위해 반 넘게 부패한 변사체 얼굴 사진을 수십 차례 들여다보기 일쑤라고 한다. 이 법의관은 치아를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반 법치의 업무도 보고 있다. 보통 한 달에 한 건 정도 얼굴을 복원한다.

복원 작업실에 시체가 누워 있진 않았다. 끌이나 정, 점토나 물감도 없었다. 정돈된 책상 위엔 고성능 컴퓨터와 산업디자인 전공자용 특수 펜이 전부였다. “예전에는 석고로 머리뼈의 틀을 떠서 거기에다 점토를 직접 붙이는 방식이었어요. 이후 머리뼈를 컴퓨터단층촬영(CT)한 뒤 뼈 모형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요즘에는 아예 컴퓨터 프로그램 내에서 뼈 모습을 구현해 놓고 근육과 살까지 모두 3차원 가상으로 붙입니다.”

한국에서 경찰 의뢰로 변사체 얼굴이 복원된 건 지난 2011년 경기 부천의 여성 변사 사건이 최초다. 이후 총 6건의 얼굴 복원이 이뤄졌고, 그중 3건의 몽타주가 일반에 공개됐지만,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된 ‘성공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가장 최근 복원 사례는 작년 12월 인천 굴포천 풀숲에서 발견된 여성 변사체 사건이다. “영국·미국 등 법의학 선진국에서는 ‘얼굴 복원’으로 변사체 신원이 밝혀져 살인범이 잡히는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는 아직 초창기라 일반 국민들이 복원된 몽타주를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민들의 적극적 제보가 절실합니다.”

2013년 6월 스코틀랜드 코스터파인힐 지방에서 한 스키 강사에 의해 발견된 여성 변사체의 머리뼈를 토대로 복원한 생전 얼굴 이미지(왼쪽). 오른쪽은 이를 참고해 경찰이 신원을 파악한 사망자 필로메나 던리비(사망 당시 66세)의 생전 모습. 현지 경찰 조사 결과 이 여성은 자신의 아들에게 살해당한 뒤 시신이 토막난 채 유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얼굴 복원 작업을 총괄한 캐롤라인 윌킨슨 영국 던디대 교수는 이원준 국과수 법의관의 지도교수였다.

전남대 치대를 나온 그는 본과 3학년 때 들은 ‘법치의학’ 수업에 매료됐다. “지문은 사람이 불에 타면 없어지는데, 치아는 끝까지 남아 신원(身元)을 드러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기억했다. 이후 “이빨도 결국은 뼈의 일부”라는 생각에 사람의 뼈 일반을 다루는 법의인류학으로 전공을 확장했고, 영국 던디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세부 전공으로 얼굴 복원을 택했다. 왜 얼굴을 전공하게 됐냐고 묻자 그는 “치과 의사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유학비를 벌기 위해 치과 병원에서 2년간 ‘페이 닥터’ 생활을 했다.

질문과 답이 모두 끝났는데 그가 기자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얼굴에 뭐가 묻었냐”고 묻자 “뭐가 묻은 게 아니라 뭐가 안에 들어 있는지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눈이 가늘고 쭉 째졌으니 눈확뼈(눈 구멍 둘레 뼈)도 아마 비슷하게 옆으로 길쭉하게 생겼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보통 변사체 입술 두께와 이빨 크기는 비례하는데, 당신은 이가 작은데도 입술이 두꺼워 신기하다”며 관찰하듯 기자의 입쪽으로 눈을 치떴다. 머리뼈가 으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