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의 기술

노아 차니 지음ㅣ오숙은 옮김
학고재 | 352쪽ㅣ2만2000원

미국 작가 도나 타트의 2014년 퓰리처상 수상작 '황금방울새'를 읽다 보면, 이 작가 최고의 재능이 소설에 있는지 아니면 고미술 보존과 복원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영국 출신 미술사학자인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노아 차니(38) 교수의 '위작의 기술'은 반대 경우다. 예술가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위조 전문가들의 모험 혹은 추락을 읽다 보면, 이 책이 참고문헌과 각주 넘쳐나는 진지한 미술서인지 아니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범죄스릴러인지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차용한 미술 범죄 사례집으로 분류해도 좋을 이 책에서 우선 벨기에의 반 데르 베켄(1872~1964)을 호명해 보자. 브뤼헤 미술관이 2004년 그를 주제로 '가짜인가 아닌가' 전시회를 열었을 만큼 인정받은 복원전문가. 특히 얀 반 에이크(1390~1441) 등 15세기 플랑드르 거장들의 작품이 '전공'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만든 작품은 '헨트 제단화'. 1432년에 완성된 이 초대형 유화는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말의 눈에 반사된 햇빛부터 학문적 분류가 가능할 만큼 섬세하게 묘사한 식물까지, 현미경의 세밀함을 과시하는 열두 폭 대작이다. 그 명성 덕일까, 탓일까. 600여 년 동안 13번이나 부분적 도난과 회수를 반복했고, 1934년에도 열두 폭 중 하나인 '정의의 재판관' 패널이 사라졌다.

라파엘로의 ‘유니콘을 안은 여인’(1506).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이 그렸던 원작에는 유니콘이 존재하지 않았다. 라파엘로 사후 누군가 여인 품에 애완견을 그려 넣었고, 더 나중에 누군가 또 뿔을 덧붙였다는 사실을 현대 과학이 밝혀냈다. 유니콘은 처녀에게만 접근을 허락한다는 전설이 있다. 은유와 상징 없는 여인의 초상은 아무리 라파엘로 그림이라도 범작의 하나일 뿐. 그림값 추락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 와중에 베켄은 사라진 패널을 복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무렵 사라진 걸작의 소재를 안다고 고백한 증권 중개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죽은 자와 베켄의 인연에 대한 증언이 스멀스멀 등장한다. 거듭되는 반전. 이번 차례는 베켄이 복원한 '정의의 재판관'에서 수백 년 된 균열과 고색(古色)이 발견되었다는 후배 전문가들의 감정이었다. 자신이 훔치고, 죄책감에 못 이겨 복원을 선언했던 것일까. 주장은 갈렸고, 베켄은 고백 없이 죽었고, 진위는 다시 미궁으로. 대신 복제화일지 진작(眞作)일지 모를 패널 뒤에서 뒤늦게 발견된 시 한 편이 상상의 불길에 기름을 얹는다. '사랑 때문이었네/ 그리고 의무감에서/ 그리고 복수를 위해/ 교활한 붓질은 사라지지 않았네'(반 데르 베켄, 1945년 10월).

현대인은 보통 위조 사건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차니 교수는 돈이 첫 번째 목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베켄의 시에 '복수를 위해'라는 구절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자신을 업신여긴 미술계에 복수하고 명성과 찬사를 쌓는 것이야말로 위조꾼이 위조에 첫발을 담그는 이유라는 것. 그렇다면 천재성과 범죄성을 가르는 기준이야말로 얼마나 모호한가.

이때 차니가 호출한 인물이 미켈란젤로(1475~1564)다. 이 위대한 천재예술가의 첫 이력은 위조꾼이었다는 것. 스물한 살 때인 1496년에 제작한 대리석 조각상을, 3세기 무렵 헬레니즘 청동 조각상 '잠자는 에로스'로 사칭했다는 것. 일찌감치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에 '복수'했던 것일까. 하지만 아이러니는 이제 시작이다.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컬렉터 리아리오 추기경이 '잠자는 에로스'를 중개상에게 반납한 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피에타'로 당당히 스타가 된다. 추기경은 이 '천재 위조꾼'에게 두 작품을 더 주문함으로써 머리 숙였다고 한다.

폴 고갱의 라일락(1885). 오른쪽은 작자 미상의 ‘라일락’ 모작.

오해 마시라. '위작의 기술'이 위조에 대한 옹호는 아니다. 미술사 전체를 오염시키는 위작과 위조꾼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의 전제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절도나 약탈 혹은 폭력 같은 중범죄와 달리, 미술품 위조는 기껏해야 부유한 개인과 기관 같은 얼굴 없는 개인에게만 손해를 끼치는 것 아닐까. 명성, 돈, 복수, 권력, 천재성, 자존심 등이 불규칙하게 빚어내는 욕망의 아이러니. 수집가의 허영과 빈약한 감식안의 격차가 만들어낸 부조리랄까.

이 책에는 '자존심' 항목이 있다. 그 사례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폴 게티 미술관이 등장한다. 이 부자 미술관이 무려 1200만달러(약 140억원)를 주고 1985년에 사들인 쿠로스(청년 등신상·等身像). 기원전 530년 그리스에서 만든 걸작으로 알고 샀지만, 기껏해야 100년 안쪽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속속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게티는 확증은 없다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천경자·이우환 화백 작품의 진위 논란을 지켜보며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면, 소심하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좋지 않을까.

평생 위조와 날조에 관심을 가졌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진실을 모른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그 역도 성립한다. 거짓을 모른다면 진실 역시 알 수 없는 법. 수면 위는 범죄소설을 읽듯 흥미진진한 독서 체험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당신의 사유(思惟)를 확장할 수 있는 철학적 체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