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15일(현지 시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에 "연말까지 방위비를 늘리지 않으면 미국의 방위 공약을 조정하겠다"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강경한 발언에 영국 BBC는 "유럽 동맹국이 날벼락(thunderbolt)을 맞았다"고 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개막된 나토 국방장관 회의를 앞두고 낸 서면 발언 자료에서 "나토 회원국들이 연말까지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토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선거캠페인 당시 "나토는 안보 무임승차를 하는 낡은 동맹"이라며 "나토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조항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매티스 장관은 방위 공약을 어떻게 조정할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나토 회원국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이 발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머리 맞댄 美·獨 국방장관 - 15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본부에서 개막한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제임스 매티스(오른쪽) 미국 국방장관이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왼쪽) 독일 국방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토는 2014년 향후 10년 내 각 회원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나토 28개 회원국 중 미국·영국·폴란드·에스토니아·그리스 등 5국만 2% 기준을 넘고 있다. 미국이 GDP의 3.61%를 국방비로 쓰는 동안, 유럽의 경제 엔진이라는 독일은 1.19%, 이탈리아는 1.11%, 스페인은 0.91%만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선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티스 장관은 "더는 미국 납세자가 서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불균형한 (방위비) 분담을 하고 있을 순 없다"며 "여러분 자녀의 안전을 당신들보다 미국인이 더 잘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나는 미국의 정치적 현실과 미국 국민의 공정한 (방위비 분담) 요구를 여러분에게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며 "이는 공정한 요구"라고 했다. '힘을 통한 평화'를 내걸고 대규모 군비 투자를 약속한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선 동맹국의 추가 방위비 분담이 피할 수 없는 요구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국방장관들은 이날 매티스 장관이 나토에 대해 강력한 지지 입장을 밝힐 것으로 봤는데, 이런 기대가 어긋났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해 유럽과 캐나다의 국방비 지출은 전년보다 3.8% 늘었다. 이는 회원국들이 100억달러를 국방에 더 썼다는 얘기"라고 했지만, 매티스 장관을 설득하진 못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나토)란?]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규모 실업과 경기 침체로 고통받는 유럽에서 정치인들이 갑자기 방위비를 더 늘리는 선택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의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장애 요인이다. 그렇잖아도 재정 적자가 심각한 유럽 국가들이 EU 재정 규칙을 지키면서 동시에 GDP 대비 2%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은 애초부터 달성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졸트 다르바스 선임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국가부도 벼랑에 몰렸던 유럽 남부 국가들에 국방비 증액은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브뤼겔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스페인, 벨기에 등은 2024년에도 국방비 목표를 맞추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강하게 느끼는 유럽 일부 회원국은 국방비 증액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발트국인 리투아니아는 현재 1.5% 정도인 방위비를 오는 2020년 2.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매티스 장관이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공식 요구함에 따라 향후 한국과 일본 등 다른 동맹국에도 같은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