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아!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연둣빛 치맛자락이 들썩일 때마다 첼로는 두꺼운 저음을 토해내며 사랑의 정감을 나눴다.

지난 1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2017 평창겨울음악제(예술감독 정명화·정경화) 개막 콘서트의 첫 곡은 작곡가 임준희의 '세 개의 사랑가'였다. 판소리 '춘향가'의 대표적 눈대목인 '사랑가'를 판소리와 첼로, 피아노와 소리북으로 새롭게 구성한 이 작품은 첼리스트 정명화(73)와 명창 안숙선(68)을 만나 산뜻한 색채를 띠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고수(鼓手) 전계열까지 가세해 언뜻 보면 생뚱맞은 악기들의 조합. 하지만 판소리와 첼로는 때론 춘향, 때론 이 도령 역할을 하며 애틋한 '밀당'을 주고받았다. 피치카토와 트레몰로, 글리산도 주법을 넘나들던 정명화는 3악장 도입부에서 "얘, 춘향아! 나도 여태 너를 업고 놀았으니 너도 나를 좀 업어다오" 소리쳤다. 객석에 웃음이 터졌다.

1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겨울음악제 개막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정명화와 안숙선. 두 사람은 “음악이 주는 연륜 덕분일까. 첫 만남에서 ‘통한다’는 동질감을 강하게 느꼈다”고 했다.

"최고였어요! '세 개의 사랑가'는 연주자와 관객이 긴밀하게 달라붙어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흥분해야 하는데, 사랑방처럼 객석과 하나 된 동질감을 딱 느꼈거든."(정명화) "국악 장단 중에 엇모리가 10박이에요. 딴 따딴 따~. 하지만 서양의 10박과 느낌이 달라서 서양 사람은 아무리 쪼개도 그 맛이 안 나는데 정 선생님은 몸에서 이미 장단을 밀어내고 계시더라고."(안숙선)

이튿날 아침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정명화와 안숙선은 전날의 호흡을 되새겼다. 안숙선은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모든 음악은 자연과의 호흡"이라며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씨를 뿌리면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숲이 무성해지면 옷을 벗어젖히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영근다"고 했다. "겨울엔 쉬어줘야 해요. 맺고 풀고. 그게 음악의 기본이거든. 정 선생님은 다다다다 밀어붙이다가도 끝에는 자연스럽게 풀어주더라고." 정명화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평창이 산과 강, 굽이굽이 흐르는 시냇물을 십분 활용해 곳곳에서 음악회를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1년 앞두고 대관령 고원에서 막을 올린 이번 음악제는 세계 정상급 음악가들을 초청했다. 올해 그래미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재즈 피아니스트 존 비즐리와 색소폰 연주자 밥 쉐퍼드, 남녀 피아노 듀오 '앤더슨 앤드(&) 로'는 개막 콘서트를 장식했다. 19일까지 클래식 무대는 손열음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매기 피네건,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 등 9명이 클래식과 재즈를 버무린다. 18일 원주시향(지휘 김광현)과 손열음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이상 엔더스는 프리드리히 굴다의 첼로와 관악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폐막 콘서트에선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이 비즐리와 한 무대에 선다.

2017 평창겨울음악제=19일까지 알펜시아 콘서트홀, (033)240-1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