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보여요(I see dead people)."

인도계 미국 감독 M 나이트 샤말란(46)은 1999년 영화 '식스 센스'에 나왔던 이 대사 하나로 '반전(反轉)의 귀재'와 '21세기의 히치콕(영화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그 뒤에도 '언브레이커블'이나 '싸인' '빌리지'처럼 반전의 미학을 강조했던 후속작들로 한동안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2004년 '빌리지' 이후 내놓는 영화마다 흥행 부진과 평단의 뭇매를 면치 못하면서 10여 년간 침체에 빠졌다. '슬럼프가 가장 긴 감독'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별명도 있었다.

영화 ‘23 아이덴티티’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는 아홉 살 개구쟁이 소년 역할까지 의상과 표정, 말투만으로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샤말란 감독이 22일 국내 개봉 예정인 '23 아이덴티티(원제 '스플리트')'를 통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달 미국 개봉 직후 3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지금까지 1억6940만달러(1900억원)를 벌어들였다. 제작비 900만달러(102억원)의 18배에 이르는 흥행 실적이다. '23 아이덴티티'에는 '반전의 귀재' 샤말란 감독의 영화 인생이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모두 숨어 있다.

①'천의 얼굴' 맥어보이의 과감한 기용

M 나이트 샤말란(왼쪽부터) 감독과 주연을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 제임스 맥어보이.

제임스 맥어보이(37)는 최근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서 텔레파시 능력을 지닌 교수 '프로페서 X' 역의 지적인 이미지로 친숙했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은 '23개의 정체성'을 뜻하는 '23 아이덴티티'에서 제목처럼 다중(多重) 인격 장애를 지닌 연쇄 살인마 '케빈' 역으로 과감하게 기용했다.

맥어보이는 이 영화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배리'와 개구쟁이 악동인 '헤드윅',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여장(女裝)을 하는 '패트리샤', 결벽증 환자인 '데니스'까지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의상과 표정, 혀짤배기 등 말투의 변화만으로도 다채로운 캐릭터를 빚어내는 맥어보이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②영화의 공감대=극적 반전+보편적 메시지

돌아보면 샤말란의 초기작들이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반전의 유무(有無)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자의 해원(解寃)을 그렸던 '식스 센스'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는 종교적 주제를 담았던 '싸인'까지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할 때, 영화의 공감대와 폭발력도 그만큼 컸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범죄자가 세 명의 10대 소녀를 지하실에 가둔다는 설정은 히치콕 감독의 1960년 작 '싸이코' 이후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샤말란 감독은 유년 시절의 학대는 평생 끔찍한 상흔(傷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슬며시 포갠다. 이 상처로 인해 영화 후반부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공통점을 발견한다. 영화 마지막에 맥어보이가 열연한 '케빈'은 "상처 입은 자들이 더 진화된 존재"라고 외치기에 이른다.

③우리 일상 속의 악당과 영웅

수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나 영화들은 불가피하게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구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의 영화는 악당과 영웅이 우리 일상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에서 출발한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초인적인 능력과 살인 욕구를 동시에 지닌 '비스트(Beast)'가 우리 주변에 존재할지 모른다는 설정을 통해서 영화는 일상 속의 악(惡)이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샤말란 감독은 자신의 2000년 영화 '언브레이커블'에 등장했던 브루스 윌리스를 '카메오'로 등장시켜 이전 작품들과의 연속성을 부각한다. '언브레이커블'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평범한 경비원이지만 대형 폭발 사고에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는 영웅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샤말란의 영화들은 얼핏 평범하게 보이지만 영웅적이거나 악마적인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는 '깜짝 반전'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기세라면 다음 번에는 브루스 윌리스와 맥어보이가 싸우는 샤말란 감독판 '수퍼 히어로 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