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계를 알기 위해선 그 한계를 살짝 넘어가보는 수밖에 없다." SF계 거장 아서 C 클라크(1917~2008) 탄생 100주년. 독창적 작가였고, 과학자였으며, 미래학자였던 그를 기념해 최근 대표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4편이 국내 최초 완간됐다. 다음 달엔 '라마와의 랑데부' 개정판도 나온다. 이 영국인 소설가를 통해 SF 세계에 들어선 입문 경력 평균 25년 '클라크 애호가' 5인이 한자리에 모여 그를 추억했다.

지난 13일 서울 연희동 SF&판타지도서관에 모여 아서 클라크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했다. 왼쪽부터 고호관·이진주·전홍식·박상준·정소연씨. 책상 위에‘지구제국’‘유년기의 끝’등 작품이 가득하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로 시작된 시리즈는 SF의 신기원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한데, 우주로 향한 인류가 초월적 외계 존재의 조력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한다는 줄거리. SF 소설가 정소연(34)씨는 "그의 소설엔 미래와 진보에 대한 낙관이 담겨 있다"며 "인류를 향한 신뢰야말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인 우주조종사 데이비드 보먼은 토성의 위성에 세워진 거대한 석판 '스타게이트'를 통과해 태아로 다시 태어난다. 우주적 존재로서 새로운 세대 '스타차일드'가 첫울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공계 여성들의 네트워크 걸스로봇 이진주(40) 대표는 "인류가 우주라는 처녀지에 처음 들어선 정자처럼 느껴졌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 존재로서 상징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영국 행성간학회 임원이자 미국 NASA 자문위원이었던 클라크는 이미 1940년대에 통신위성을 예견했고, 인터넷, 핵추진 우주선, 우주정거장 등을 그려냈는데, 수십 년 후 모두 현실이 됐다.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디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을 정도. 우주선이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궤도를 조정하는 스윙바이(Swing-by) 기술은 클라크가 소설에 쓴 지 11년 뒤에 미국 보이저 1호가 똑같이 재현해내기도 했다. 박상준(50) SF 아카이브 대표는 "1980년대 이미 통신으로 스리랑카에서 미국으로 소설 원고를 전송했던 클라크가 만약 지식재산권을 갖고 있었다면 엄청난 거부(巨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성을 바탕으로 소설에서도 엄격함을 고수했다. 전홍식(43) SF&판타지 도서관장은 "중학생 수준의 쉬운 과학 지식을 정교하게 구축해 하드 SF임에도 가독성을 확보하는 장인의 솜씨를 발휘한다"고 평가했다.

'스페이스…' 시리즈는 2001년과 2010년, 2061년을 지나 3001년의 미래를 제시한다. 미지의 생명체가 빠질 수 없다.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1953~1999)'을 번역한 고호관(40)씨는 "외계인을 '스타워즈' 같은 활극의 대상이 아닌 인류의 진화를 견인하는 존재로 상정했다"며 "소설적 상상력을 무리 없이 전개하기 위한 논리적 장치일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알파고' 이후 미래 종족으로서 인공지능이 시사하는 바가 커졌다. 박 대표는 "소설 내 우주선 인공지능 컴퓨터 'HAL'은 인간이 자신을 속이며 모순된 명령을 내리자 목적 수행을 위해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한다"면서 "소설은 인공지능이라는 정교한 도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일찍이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했다.

생전의 아서 클라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다." 이날 애호가 다섯 명은 그가 부려놓은 마법에 밤늦게까지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