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논설위원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도 넘지 못한 장벽이 있었다. 국민한테 세금 걷는 일이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나폴레옹이 말년에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 패배한 것을 군사력과 전술 약세로 설명할 것이다. 독일의 세금 전문가 하노 벡 교수와 알로이스 프란츠 교수는 공저 '세금 전쟁'에서 이를 세금이라는 잣대로 분석한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과도한 세금과 생활고에 분노한 민중들이 봉기해 구체제를 뒤엎고 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세웠다.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부와 특권은 누리면서 세금은 내지 않는 현실에 폭발했다. 무거운 세금에 대혁명이 일어난 나라이니 나폴레옹이 국민에게서 세금 쥐어짜 전쟁 비용 조달하기는 쉽지 않았다.

바다 건너 영국은 사정이 달랐다. 대혁명 9년 뒤인 1798년 영국 의회에서는 소득세 징수 법안이 통과됐다. 근대적 의미의 소득세가 이때 시작됐다. 소득세로 재정 지원이 든든했던 덕에 영국군이 전쟁에서도 우세했다는 게 세금 전문가들이 바라본 승패의 이유다. 이 소득세는 워털루 전투가 끝난 이듬해 폐지됐다가 30년 뒤 부활했다. 당시 소득세율이 3%에 불과했는데도 납세자들이 부글부글했다고 한다. 나라가 개인 주머니를 빤히 들여다보고 돈 거둬가는 것에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은 납세가 국민의 의무라고 각국 헌법에 못박아 놨으니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소득세 내야 한다는 마음의 각오쯤은 다 한다. 다만 누가 얼마만큼 부담하고, 덜 부담하느냐의 형평성을 놓고 갑론을박은 늘상 계속된다.

작년에 걷힌 국세가 1년 전보다 10%도 더 늘어 242조원이다. 그중 3분의 1가량은 부가세·개별소비세·교통세 같은 간접세이고, 소득세와 법인세 같은 직접세가 각각 68조원, 52조원 걷혔다. 세금 늘어난 만큼 여기저기 입 튀어나온 국민이 상당하다. 흡연자들은 "나라에서 담뱃값 올려 내 돈만 뜯어갔다"고 불만이다. 기업들은 "불황이라고 기껏 허리띠 졸라 비용 줄여서 적자 면했더니 거기에서 세금을 뜯어간다"고 울상이다.

월급쟁이들 불만도 만만치 않다. 소득세 가운데 가장 큰 항목이 근로소득세인데, 지난해 우리나라 근소세 수입이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었다. 1년 전에 비하면 14.6%나 늘었다. 그것도 1730만명 근로소득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근소세를 안 내고, 나머지 절반 좀 넘는 월급쟁이들한테 걷은 세금이다. '세금 털' 더 뽑히는 '월급쟁이 거위'는 소득 늘어난 것보다 세금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른데도 "꽥" 소리도 못 지른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한 박근혜 정부도 명목세율만 그대로 유지했지 이런저런 방법으로 증세했다. 정부 지출 가운데 제일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복지 비용이라 세금 부담 늘어나는 건 앞으로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세제 개편을 제대로 고민하고 과세 기반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 시점인데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세금 앞에선 정치 쇼만 한다. 1730만 근로자가 내는 소득세가 다 합쳐 30조원 갓 넘는다. 그것도 전체 근로자의 3%에 불과한 연봉 1억원 초과 월급쟁이가 절반 이상을 부담하는 구조다. 그런 나라에서 유력 대선주자가 공무원을 81만명 뽑겠다느니, 30조~40조원 소요될 선심 공약을 대책 없이 내놓는다. 부자 증세면 온갖 복지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지만 작년 말에 요란하게 5억원 이상 소득 구간에 신설한 세율 40%에 해당하는 근로소득자는 9000명 정도뿐이다. 이들 세율을 50%, 60%로 올려봤자 배 아픈 국민 속은 후련하게 해줄지 몰라도 계속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말정산이 바뀌면서 근소세 면제자가 갑자기 200만명 넘게 늘어 48%에 이른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이들에게 세금 만원씩이라도 다시 내보자는 말은 입도 벙긋 안 한다. "소득이 쥐꼬리라 세금 낼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라는 논리를 편다.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근소세 면제자를 들여다보면 88%가량은 연봉이 3000만원 이하 소득층이지만, 나머지 90만명가량은 3000만원 초과 소득층이다. 연봉 3000만원 안 되는 소득층에서도 300만명 넘는 사람이 근소세를 낸다. 일본은 근소세 면세자 비율이 15%에 불과하고, 비중 높은 미국도 35% 수준이다. 그런데도 면세자 줄여 과세 기반을 확대하는 조세 원칙을 세워보자는 논의 같은 건 우리나라 정치판에 가면 온데간데없다.

누군들 세금 더 내고 싶겠는가. 하지만 점점 늘어날 수 밖에 없는 복지 비용을 감당하면서 사회 안전망을 갖추자면 많든 적든 다들 능력껏 세금 내겠다는 사회 연대 의식부터 갖춰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 각오로 납세자인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