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극물 테러로 암살되자 김정남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잇는 비선(秘線)이었다는 최근 보도가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의원이던 2002년 5월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독대한 적이 있다.

주간경향은 지난 11일 전(前)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관계자의 말과 유럽-코리아재단이 북측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근거로 "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의 대북 비선은 김정남이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 유럽-코리아재단 핵심관계자는 "김정일에게 보낸 박근혜 대통령의 친서는 유럽-코리아재단 소장이던 장 자크 그로하가 USB(이동식 저장장치)와 출력물 형태로 들고 중국 베이징에 가서 김정남을 만나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편지가 김정남의 고모부인 장성택 라인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유럽-코리아재단은 북한 어린이에게 지원 물품을 보내거나 유럽 상공인과 함께 방북 사업을 해온 단체로, 박 대통령은 2002년부터 10년간 이 재단 이사직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에 따르면 재단과 김정남이 2005년 9월17일부터 2006년 3월31일까지 총 22회 메일을 주고받았다고 주간경향은 보도했다.

유럽코리아재단과 주고받은 메일의 송·수신자 이름은 한글로 '김정남'이라고 쓰여 있으며, 이메일 계정은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 가입돼 있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피살된 김정남이 유럽-코리아재단 핵심 수뇌부와 주고 받은 메일 중 하나. 김정남은 메일에서 고모부(장성택)의 환갑을 맞아 한복을 지어 북한에 보내고 싶다는 등의 요청을 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또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이 김정남 망명 공작을 시도한 정황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당시 국정원이 김정남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정작 김정남은 한국보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미국 측과의 협상이 결렬됐고 유럽은 대북 정보에 관심이 없었으며 한국도 김정남의 요구를 맞출 수 없어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또 2005년 12월 김정남은 메일을 통해 "명년(내년) 2월 23일이 고모부 회갑이다. 한복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전했고, 재단 측은 "옷감, 재질, 체형 등 구체적 수치가 필요하다. 장 자크 그로하를 통해 치수 재는 법 등의 설명이 들어있는 그림을 보내겠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모부는 2013년 12월 처형된 장성택이다. 당시 장성택 회갑을 맞아 한국에서 한복을 지어 북한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요청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2월 경향신문은 2005년 7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도 입수해 보도했다.

편지에는 "위원장님을 뵌 지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위원장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보천보 전자악단의 남측 공연, 평양에 건립할 경제인 양성소 등이 아직 실현되지 못해 안타깝다. 유럽코리아재단의 평양 사무소 설치가 절실하다. 재단과 북측 관계기관들이 잘 협력해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희망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