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가 어떨지는 나도 모르지. 근데 이렇게 약 뿌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지난 13일 오후 1시쯤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서 45년째 한우를 키우는 김모(66)씨가 방역복 차림으로 축사에 들어섰다. 곧이어 그의 등에 실려 있던 소독 기계에서 "웽" 하는 소리와 함께 소독 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한우 서른 마리가 놀라며 축사 구석으로 달아났다. 김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이웃 마을 농가로부터 불과 3㎞ 떨어진 이곳에서 자식 같은 소들이 구제역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하루에도 4~5번씩 이렇게 소독 작업을 한다고 했다. "(소들이) 저렇게 놀라 뛰어다니는 걸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데, 살려면 어쩌겠어…."

소독약 뿌리는 농장주 -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마로면의 한 축산 농가에서 농장주가 축사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이 축사는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3㎞ 남짓 떨어진 곳이라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김씨는 지난 5일 보은군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하자 직접 소 30마리에 백신 주사를 놓았다. 정부가 해준다는 일제 접종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수의사의 감독 없이 처음 해보는 백신 접종이라 아내와 둘이서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는 "보은에서 살처분한 소가 수백 마리라는데, 우리 축사까지 봐줄 사람은 없을 것 같아 일단 급한 대로 주사를 놨다"며 "접종이 제대로 됐는지 몰라 틈날 때마다 '내 새끼들 데려가지 마시라'고 하늘에 기도한다"고 말했다.

"백신 교육은 들어본 적도 없다"

이번 구제역으로 인구 3만5000명의 보은군은 쑥대밭이 됐다. 14일까지 구제역이 발생한 전국의 농가 9곳 중 7곳이 이곳에 집중됐고, 약 800마리의 소가 살처분 됐다. 피해가 발생한 마로면·탄부면 일대는 100여 개 농가가 소 9000마리, 돼지 3500마리를 사육하는 축산 밀집 단지다.

이 지역에서 젖소를 키우는 60대 A씨는 "요즘엔 바람만 많이 불어도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그는 "나도 직접 백신을 놓고 있지만, 백신 접종 교육은 받아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며 "항체가 있어도 걸린다는데 이러다 마을에 있는 소를 다 죽이는 것 아니냐"고 했다.

보은의 축산 농가들은 "백신 접종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부는 왜 그걸 소홀히 해놓고 우리만 탓하느냐"고 했다. 농가의 자체 백신 접종을 포함해 가축전염병 예방 전반을 관리해야 할 수의직 공무원, 이른바 '가축방역관'은 전국 228개 시군에 208명뿐이다. 지자체 한 곳당 채 한 명이 안 된다. 가축방역관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 이번 구제역 발생 지역의 경우 충북은 11개 시군에 12명, 경기도는 31개 시군에 31명, 전북은 14개 시군에 14명이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상 필요한 인원의 절반도 안 된다.

지자체의 위탁을 받아 백신을 접종하는 공공(公共) 수의사 수도 부족하다. 소 5000마리를 키우는 보은군 마로면의 경우, 공공 수의사가 한 명뿐이다. 군청 관계자는 "처우나 업무 여건이 열악한 편이라 가축방역관과 공공 수의사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인적 드물어진 마을, 상점들도 타격

보은군의 축산 농민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고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을 최대한 차단하려고 농장 진입로에 볏짚을 쌓아두는가 하면, '구제역 확산 통로'로 지목된 25번 국도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주민 B씨는 "지금 괜히 밖에 돌아다니다 나중에 구제역을 옮겼다는 의심이라도 받으면 이 마을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했다. 우시장은 문을 닫았다. 남편과 함께 한우 농장을 운영한다는 C씨는 "26일에 가축 시장이 열리면 소를 내놓으려 했다가 구제역 때문에 갑자기 시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이젠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조차 없는 상태"라고 했다.

구제역에 일반 주민들도 외출 꺼려 - 지난 13일 충북 보은군 마로면의 한 중국 음식점에 ‘휴일’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음식 배달용 오토바이 두 대도 문 앞에 세워져 있다. 이곳뿐 아니라 일대 상가 대부분이 문을 닫아 휑한 모습이다. 보은군에선 지난 5일부터 열흘 사이에 7건의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축산 농가 관계자는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외출을 꺼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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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주민들까지 외출을 꺼리다 보니 주변 상가들도 영업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면사무소 근처 식당도 두 곳 중 한 곳은 문을 닫았다.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거리엔 정적만 흐른다. 축산단지 인근 주민은 "보은이 전국에 구제역 진원지로 알려지면서 주민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라며 "마을 전체에 재앙이 닥친 느낌"이라고 말했다.

구제역 백신 부족 사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14일 "올해 국산 백신 제조시설 설계 예산으로 12억원을 확보했다"며 국산 백신 확보를 위한 제조시설 건립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 690억원이 드는 국산 백신 제조시설의 완공 시점은 2020년 전후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