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진·소설가

지난주 토요일의 서울시향 정기공연에는 20여명의 수도방위사령부 군인이 함께했다. 서울시향의 초대였다. 한데 1부를 마친 후 보니 그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몇몇은 아예 사색이 되다시피 했다. '이걸 어떻게 더 듣지?' 하는 얼굴. 그도 그럴 것이 1부 프로그램이 최신곡인 브렛 딘의 비올라 협주곡이었다. 애호가 중에도 현대음악이라면 질겁하는 이가 적지 않은데 그들에겐 오죽했으랴.

그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안쓰러워 내심 격려했다. 걱정 마라, 제군들. 2부는 베토벤이라네.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펑키(funky)한 곡을 여럿 써낸 불꽃 남자지. 교향곡 4번은 거뜬할 거야!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곡이 끝나자 다른 관객이 브라보를 연호하며 박수 칠 때 내 옆의 그들은 '드디어 끝났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클래식 관람 자체가 고문이었던 것이다.

귀가하는 동안 진입 장벽에 대해 생각했다.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데 드는 비용은 통념과 달리 크지 않다. 만원짜리 한두 장이면 국내 정상급 악단의 공연을 볼 수 있고, 티켓 오픈할 때 서두르면 꽤 괜찮은 자리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진입 장벽은 비단 금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즐기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선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화적 여건과 관련해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클래식뿐 아니라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다. 저렴하고도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가 일상 곳곳에 있지만 다들 멀게 느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화 소양이 증진되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를 못 따라왔다는 말이다. 여전히 우리에겐 경제가 절대적인 화두이고 문화는 뒷전이다. 소설 한 편 읽는 것조차 사치 또는 시간 낭비로 인식되는 요즘이지 않나. 심지어 '공연예술 최대의 적은 일만 하느라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풍토'라는 말도 나돈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배부른 돼지로 여겨질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