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을 그만둔 사람에게 당장 가장 아쉬운 걸 물었다. "운전기사를 둔 회사 차"라고 했다. 몇 달 뒤 다시 봤을 때 등산복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택시 잡는 게 처량하다"던 분이 "공짜 지하철 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고 했다. 65세가 넘은 줄 그때 알았다. "충청도·강원도까지 공짜로 갔다"며 "정말 살 만한 나라"라고 했다. 그는 강남 고층 맨션에 사는 수십억 자산가다.

▶온양온천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소식을 8년 전 들었다. 어르신들의 추억 여행 명소가 되면서 30년 불황을 이겨냈다고 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온양온천역까지 연장된 게 계기였다. 편도 요금 3250원이지만 어르신에겐 공짜다.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에 출발해 목욕하고 퇴근 시간 전에 올라온다. 온천 요금도 어르신 할인을 받는다.

▶'인천공항 피서' 이야기도 공항철도 개통 이후 나왔다. 전 구간 개통 이후 무임승차 혜택을 받은 어르신들이 땡볕 탑골공원 대신 냉방이 서늘하고 공간이 널찍한 인천공항을 찾는다는 것이다. 차창 밖 바다 경관도 그만이란다. 공항 식당이 비싸 도시락도 싸간다. 불볕더위가 심한 날에는 공항 의자를 어르신들이 장시간 차지한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무임 승하차가 가장 잦은 역은 1호선 제기동역이다. 53%가 공짜 승객이다. 경동시장·약령시장처럼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장터와 함께 어르신의 사교 장소인 콜라텍이 밀집한 곳이다. '노인들의 홍대 앞'이다. 제기동역 다음은 소요산역·용문역·온양온천역 순서다. 세상 일이 그렇듯 공짜 지하철 역시 이익을 보는 측과 함께 볼멘소리하는 측이 있다. 도시철도 운영 회사들이다. 한 해 운임 손실이 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했다.

▶어르신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지 않기 시작한 건 33년 전이다. 당시 대한노인회장이 전두환 대통령의 장인이라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다. 65세 넘는 인구가 4.1% 때였다. 지금은 13%다. 20년 뒤엔 30%가 넘는다. 물론 어르신들 탄다고 해서 기름 값이 더 드는 것은 아니다. 경영의 비효율성을 고칠 생각 않고 어르신만 탓한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돈을 내는 세대와의 마찰도 일어난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어르신을 일각에선 '지공거사(地空居士)'라고 부른다. 어르신의 나이 기준을 올려 논란을 줄여보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고민할 시점인 듯하다. 무엇보다 요즘 65세는 노인정에선 '새파랗다'는 취급을 받는다는데 이들을 노인이나 어르신으로 부르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