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데 화장실이 안 보이네. 저기 차 뒤로 가서 해결하자."

토요일인 지난 11일 오전 3시 3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번화가에 위치한 D빌딩 주차장. 주변 유흥업소에서 나온 20대 남성 두 명이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건물 뒤 주차장으로 향했다. 으슥한 곳에서 소변을 본 이들은 "여기 오줌 냄새 진짜 심하네"라며 자리를 떴다. 이들뿐이 아니었다. 이날 오전 2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17명이 이곳 주차장에서 노상 방뇨를 했다. 이 빌딩 주변에 있는 유흥업소에서 주차 요원으로 일하는 권영두(39)씨는 "하룻밤에도 수십 명이 노상 방뇨를 하는 바람에 주차장이 금방 한강이 된다"며 "말로 주의를 주면 술 취한 사람들이 멱살잡이하며 시비를 걸기 때문에 아예 확성기를 사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관광 명소가 된 강남대로가 밤마다 '노상 방뇨'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본지 기자가 지난 10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주점과 유흥업소가 밀집한 강남대로 일대를 살펴본 결과, 주차장이나 골목에서 노상 방뇨를 하고 있는 사람이 수십 명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강남자(64)씨는 "한참 장사하고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쳐다보면 트럭 뒤에서 남녀 할 것 없이 소변을 보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노상 방뇨로 인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취객 사이의 다툼도 빈번하다. 지난달 25일 밤에는 '실버타운' 오피스텔 주민 김모(71)씨가 오피스텔 입구에서 노상 방뇨를 하고 있던 주모(25)씨에게 "왜 남의 집 입구에 오줌을 싸느냐"고 지적했다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0분간 김씨를 폭행해 전치 5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주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한 주민은 "한적한 거주지역까지 들어와 노상 방뇨를 하는데 시민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노상 방뇨를 개인적인 일탈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강남대로 일대에 야간 유동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공용 화장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 결과, 지하철 2호선 강남역부터 9호선 신논현역까지 강남대로 양쪽에는 지자체가 설치한 공중 화장실이 한 곳도 없었다. 다만 건물주들이 서초구·강남구의 지원을 받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개방 화장실' 8곳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중 6곳은 오후 11시쯤 모두 폐쇄된다. 24시간 운영되는 나머지 두 곳은 주점이 밀집한 지역에서 200~400여m 떨어져 있어 쉽게 이용하기 어렵다. 또 개방 화장실 8곳 중 5곳은 건물 외벽에 안내 표지도 붙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급한 사람들은 수백m 떨어진 강남역까지 뛰어가서 지하도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강남대로 상인들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 건물주들이 행인들에게 개방해오던 화장실 문을 걸어잠그는 바람에 화장실 부족 현상이 심해졌다. 한 의류매장이 입점해 있는 건물 관리자 이모(61)씨는 "살인 사건 이후로 입점한 상인들이 외부인 출입을 꺼리기 때문에 야간 시간 화장실 개방을 중단했다"며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했다.

구청들은 건물주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 안전한 화장실을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이 건물주들을 서너 차례씩 찾아가 화장실을 개방해달라고 설득했다"며 "하지만 '세입자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 '재산권 침해다'라며 대부분 거절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물주들의 얘기는 다르다. 화장실을 개방할 경우 서초구는 두루마리 휴지를, 강남구는 월 8만원을 보조하는데,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빌딩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태성(71)씨는 "예전에 화장실을 개방했을 때 밤만 되면 화장실 이용하려는 손님들로 건물 1층 복도가 미어터졌다"며 "현실적으로 구청에서 주는 몇만원 받자고 화장실을 개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