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명문 외고에서 지난해 퇴직한 수학 교사 김모(57)씨는 최근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입시 전문 학원의 '상담 고문'이 됐다. 10년 가까이 고3 담임을 했던 김씨가 많은 제자를 명문대로 보낸 '시험 문제 족집게'라는 소문이 나자 학원 측이 스카우트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가서 학생들에게 공부 조언을 하고, 학부모들을 만나 입시 상담을 한다. 김씨가 '내신 예상 문제 특강'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잘 쓰는 법' 같은 특강을 열면 수백 석 규모의 강의실이 꽉 들어찬다.

요즘 대치동 입시 학원에선 김씨처럼 명문 고교 출신 교사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대입에서 수능 성적이 아닌 학생부를 통해 신입생을 뽑는 '학생부 종합 전형(학종)'의 비중이 매년 커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기존의 수능 중심 강의에서 벗어나 내신 강의를 확대 편성하는 학원들이 입학사정관 경력이 있거나 진학 지도에 잔뼈가 굵은 교사 출신을 우대하는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로비에서 학생들이 광고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 학원은 전직 명문고 진학부장을 입시전략연구소장으로 영입해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퇴직 후 학원 재취업에 성공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전관(前官) 예우'라는 말도 생겼다. 한 입시 학원 관계자는 "강사 연봉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업계 불문율"이라면서도 "교사 월급의 서너 배는 족히 된다"고 했다. 매년 서울대 진학률 1~2위를 다투는 한 특목고의 진학부장으로 일했던 교사는 상담만 한다는 조건으로 월 600만원을 보장받았다.

입시 학원들은 대학 합격자 발표가 끝나고 재수생들이 쏟아지는 2월을 맞아 '전관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엔 '학생부의 완결판, H고 진학부장 전격 영입' 'Y고 출신 교사와 명문대 정복' 등의 플래카드가 여러 장 붙어 있다. 본지가 대치동 입시 학원 10곳을 조사했더니 4곳이 교사 출신 상담실장 또는 강사를 고용하고 있었다. 대치동의 입시 학원 관계자는 "2월 초부터 재수 종합반 개강이 이어지는데, 유명 고교의 교사 출신 강사가 없으면 학생들을 끌기 어려워 학원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3수를 준비 중인 임모(21)씨는 "학종이 대세가 되면서 재수생들은 진로 지도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들이 강사로 있는 학원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대학 12곳에서 학종으로 뽑는 신입생의 비율은 2017학년도 34%에서 2018학년도에는 44%까지 늘어난다.

전관 중에서도 각 고등학교에서 대입 관련 업무를 맡는 진학부장 출신이 특히 인기가 높다. 서울의 한 자율형 사립고에서 수년간 진학부장을 했던 박모(54)씨는 최근 대치동 학원 세 곳으로부터 '상근은 하지 않아도 되니 입시전략연구소장을 맡아 상담만 좀 해달라' '퇴직하고 강의를 할 생각은 없느냐' 등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요즘 주변에 이런 제의를 받은 동료 교사들이 꽤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과 인맥이 좋은 교사들도 영입 우선순위로 꼽힌다. 학원의 고객인 학생들을 끌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입시 상담뿐 아니라 직접 강단에 서는 교사 출신도 늘고 있다. 강남의 한 고교 과학 교사를 거친 강사 3년 차 이모(43)씨는 "철저히 내신 트렌드 위주로 수업을 했더니 일타(1순위로 수업 마감) 강사가 됐다"고 했다. 강남의 주요 학원에 출강 중인 국어 교사 출신 김모(42)씨도 "출제자 입장에 있었던 사람이니 적중률이 확실히 높다"며 "학생과 학부모들도 그 점을 알아봐 준다"고 했다.

고3으로 올라가는 자녀를 둔 윤모(여·53)씨는 "내신을 망치면 복구할 기회가 없는 학종 시대 아니냐"면서 "교사 출신 강사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학교 시험을 잘 칠 수 있는지 '노하우'를 잘 알고, 진학 지도 경험도 많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