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란 곡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작곡가인 시벨리우스는 설명한 적 없어요. 저 또한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질문을 받으면 선뜻 대답을 못했죠. 나이가 들고서야 깨달았어요. 시벨리우스는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내면을 이 곡에 투영했던 거예요. 마지막에 클라리넷이 홀로 길게 연주하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그때 배어 나오는 감정은 멜랑콜리. 그는 외로웠던 거예요."

11일 예술의전당. 서울시향과 함께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전설'을 들려준 핀란드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61)는 반죽을 빚는 숙수(熟手)처럼 오케스트라에게서 은은하고 섬세한 소리를 뽑아내고 있었다. 125년 전 모국의 작곡가가 자기 고백처럼 써내려간 작품을 냉정하게 클라이맥스로 이끌었다. 공연장 밖의 혹한과는 다른 결의 서늘함이 객석에 엄습했다. 공연 전 연습실에서 만난 사라스테가 "그건 살을 에는 고독이고 우울이다"고 했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7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사라스테는“지휘를 하기 전 교향악단 바이올린 주자였지만 내가 욕심이 많은지 한 파트만 연주하는 게 성에 차지 않았다. 전부를 아우르고 싶었다”고 했다.

사라스테는 지휘 강국(强國) 핀란드에서 치열한 국내 경쟁을 뚫고 세계 정상급 지휘자로 올라선 인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1987년부터 15년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출시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핀란디아)으로 이름났다. 명성은 2002년 BBC 교향악단 수석 객원지휘자로 활약하면서부터다. 2006~2013년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과 수석지휘자를 지낸 데 이어 2010년부터 독일의 명문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내한할 때마다 호연을 펼치는 그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그의 지휘 역량을 키워준 요람은 핀란드 최고의 음악학교인 시벨리우스 아카데미다. 요르마 파눌라(87) 밑에서 배웠다. "파눌라는 '힘을 가진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표현 방법, 음악적 사고와 추구하는 바, 색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죠. 처음부터 지휘봉을 흔들 게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해보거나 작곡을 해서 기초를 쌓고, 다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 보는 식으로."

사라스테는 젊은 지휘자들에게 "집요하게 생각하라, 질문하라"고 요구한다. "'네 느낌은 어떠니?' '무슨 소리를 만들고 싶어?'처럼 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한층 깊어진 소리가 나와요. 그걸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