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 이 아름다운 산문을 쓴 월북 예술인 김용준의 비극적 최후를 떠올리면 가슴 아프다. 그는 1967년 평양에서 자살했다. 김일성 초상화가 실린 신문을 집 앞에 버린 게 알려지자 처벌받을 게 두려워서였다고 한다. 고고한 품격의 화가·문필가였던 그가 공산 전체주의 사회 실상을 모른 채 북으로 올라간 것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시인 백석은 또 어떤가. 토속 모국어의 맛을 절정의 경지에 끌어올린 그는 월북 후 북한 체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 동원됐다. 그러나 낭만적, 예술지상주의적 성향이 끝내 문제 돼 집필을 금지당했다. '순결한 영혼의 시인'으로 불렸던 그는 압록강변 집단 농장으로 추방된 후 일이 서툴러 주변의 놀림을 받았다. '조선의 체호프'였다던 소설가 이태준도 있다. 그는 반동작가로 몰려 숙청됐고, 다섯 자녀마저 철저히 망가진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긴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도 스탈린 치하에 살았다면 인간과 역사를 그렇게 깊이 있게 파고든 걸작들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와 개성이 생명인 예술은 문예를 이념의 도구나 하수인쯤으로 여기는 공산주의와 애초부터 함께하기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소련 문학이 바깥세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솔제니친이 스탈린 독재의 만행을 고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를 발표하면서다.

▶3년 전 북한 세습 독재의 비인간성과 주민의 처참한 생활상을 폭로한 소설집 '고발'로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반디의 시집이 3월 말 국내 처음 출간된다고 한다. '반디'는 필명이며,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60대 후반 작가로 알려졌다. 그의 실재(實在)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북한을 그리는 솜씨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으로 보아 북한 A급 작가일 것"이라고 한다. '지옥에서 부르는 노래'에 실린 50편의 시에는 김씨 왕조의 횡포에 대한 분노와 동포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굳어진 거지 시체 밟고 넘으며/생활전선 대군이 아우성치는/아 신성천역 공산주의 종착역'.

▶스탈린의 소련이 그랬듯 북한은 문학과 예술을 하려면 숨어서라도 목숨 걸고 저항하고 맞서야 하는 사회다. 반디의 꿋꿋한 대결을 보며 김용준·백석·이태준의 배반당한 순정을 생각한다. 우리 지식인들은 민족을 자주 얘기하면서 북한 정권의 탈선과 동포들의 비참한 처지를 고발하는 데는 왜 인색한 건가.

고려인 화가 변월룡이 1953년 그린 월북 화가 근원 김용준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