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진 정치부 차장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원유철·안상수 의원과 이인제 전 의원이 참석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대선 후보를 상임고문으로 모시고 매주 당 상황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에선 이들 외에도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관용 경북지사, 조경태 의원 등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성완종 사건'으로 재판 중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정우택 원내대표, 김기현 울산시장도 출마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합쳐 '10룡(龍)'이란 말도 등장했다.

이 중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황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의미 있는 지지율이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 이름조차 못 올리는 사람이 거의 전부다. 일부는 대선 때마다 상습적으로 출마하는 사람도 있다. 당 사무처 실무자들은 "당이 망가져서 변변한 후보를 낼 형편이 못되니 '나도 대선에 도전했다'는 경력을 남기려고 너도나도 나온다"며 "우리가 보기에도 부끄럽다"고 말한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최순실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당 역사상 두 번째 겪는 위기라고 말한다. 첫 번째는 2004년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자금 '차떼기' 사건으로 중진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까지 겹쳐 당 지지율은 15%대로 추락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50석도 못 건질 것이란 예상이 파다했다. 지금 새누리당도 지지율이 12% 전후로 떨어졌고 대선 승리를 전망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등이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연찬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3년 전 한나라당과 지금 새누리당이 다른 점은 위기에 대처하는 구성원들의 태도다. 한나라당은 위기가 닥치자 중진들이 앞장서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관용 국회의장과 최병렬 대표를 필두로 김용환·강삼재·정창화 등 현직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졌다. 공천이 끝나기 전에 불출마한 사람이 30명에 가까웠다. 그해 3월 뽑힌 박근혜 대표는 천막 당사를 차리고 사무처 당직자 절반을 구조조정했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121석을 얻으며 기사회생했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2004년 한나라당'보다 '2007년 열린우리당'에 가깝다.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대선 주자가 난립했다. 예비 후보로 등록한 사람만 정동영·이해찬·한명숙 등 10여명에 달했다. 이 중 누구도 노무현 정부가 초래한 국론 분열과 경제 위기에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자유한국당으로 개명 예정인 새누리당에서도 이번 사태에 책임지고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너도나도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이 위기를 맞자 우상호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2004년 총선에서 자기 혁신을 통해 위기를 탈출한 과정을 배우자. 적(敵)이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보수는 혁신을 통해 생존했다. 혁신은 반성과 책임에서 출발한다. 새누리당은 '적'들이 배우고 싶어했던 과거를 까맣게 잊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