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에서 본 옷 바로 구입 가능…기존 3~6개월 걸리는 과정을 하루로 앞당겨
2009년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패션쇼 생중계 시작
아렌츠와 베일리 '파격 인사'로 낡은 이미지 벗고 브랜드의 헤리티지 되찾아
베이지톤 트렌치 코트와 체크무늬 목도리.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를 연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올드’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버버리는 10년전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확 달라졌다. 현재 버버리는 ‘디지털 미디어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 해 9월 버버리는 런던에서 패션쇼를 진행하며 이를 버버리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으로 전세계에 생중계했다. 다음날 버버리 청담동 매장에는 승마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브라이들백’과 영국 왕실을 연상케 하는 ‘캐벌리 재킷’ 등 버버리의 신상품이 진열됐다. 불과 몇시간전 모델이 런웨이에서 뽐내던 제품들이다. 보통 브랜드는 한 시즌 앞서 패션쇼를 진행하기 때문에, 런웨이에 오른 상품을 구매하려면 3~6개월 기다려야 한다.
버버리 관계자는 “버버리는 지난 가을 런웨이 직후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한 시도를 하면서 젊은 세대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며 “전통 명품의 클래식함을 유지하면서도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관리 실패로 명품 이미지 훼손되며 매출 급감 시달려
의회 민주주의, 스카치 위스키와 더불어 영국을 상징하는 명품 브랜드 버버리. 1990년대는 버버리에 시련의 시기였다. 지나친 대중화로 명품 브랜드로서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할아버지 세대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은 젊은 소비자를 떠나게 했다. 심지어 버버리의 상징과 같던 고유 패턴이 싸구려 셔츠와 야구모자에 사용되는 걸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믿었던 아시아 시장에서도 매출이 급락했다. 1997년 버버리의 순이익은 250만파운드로 전년(620만파운드)보다 60% 가까이 급감했다.
당시 버버리는 지금처럼 세계에서 통용되는 단일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1997년 이전 버버리 경영진은 각 나라의 책임자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버버리 브랜드를 활용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결과 버버리는 브랜드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었다. 소비자들이 버버리를 생각할 때 마음속에 떠올리는 버버리는 나라마다 달랐다. 미국에서 버버리라고 하면 900달러짜리 코트나 200달러짜리 스카프를 뜻했다. 한국에서는 체크무늬 목도리였고, 스위스에선 시계였다. 버버리 경영진은 당시를 회상하며 “라이선스를 남발한 탓에 버버리의 로고와 패턴을 입힌 제품이 너무 많이 퍼져 있었다”고 말했다.
◆ '체크무늬' 벗고 혁신을 입다…제품의 DNA를 바꾸고 헤리티지를 찾다
10년 전 버버리는 혁신을 택했다. 2006년 버버리는 미국 의류브랜드 리즈 클레이본의 부사장 앤절라 아렌츠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아렌츠가 받은 주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함께 ‘새로운 버버리’를 만들어내라는 것. 이들은 버버리의 시그니처와도 같던 체크무늬 비중을 전체 상품의 10% 이하로 낮추는 모험을 감행했다.
150년간 이어온 갈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패턴 일변도에서 벗어나면서 버버리가 새롭게 브랜드 상징으로 삼은 것은 말 탄 기사 문양과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의 흘림 서명이었다. 제품 소재도 레이스, 메탈, 가죽 등으로 다변화해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세련되고 우아하게 변화시켰다.
새로운 버버리 코트에는 꽃무늬가 들어가기도 하고 금색, 노랑, 핑크, 파랑, 녹색 등 화려한 색상도 쓰였다. 기존 H라인 대신 허리선을 살린 디자인으로 한결 가볍고 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머플러, 가방, 벨트 등 액세서리 부문을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액세서리는 젊은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액세서리 라인은 전체 브랜드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아렌츠는 “버버리는 영국 브랜드인 만큼 음악, 모델 등 모든 요소가 영국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세계 모든 매장이 일관성을 갖도록 관리하면서, 그와 동시에 세계 각국 ‘패션 피플’이 이러한 ‘영국의 멋’을 즐기는 모습을 과시하는 전략을 썼다.
◆ 브랜드의 재정립…밀레니얼 세대도 트렌치코트를 입게 하다
아렌츠는 “모든 전략을 트렌치코트 중심으로 짜자”고 강조했다. 트렌치코트 안에는 ‘영국다움(Britishness)’ 등 이 브랜드의 핵심 요소가 모두 담겨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다. 버버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에게 트렌치코트를 제공하고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코트를 입고 은막을 누볐던 트렌치코트의 명가(名家)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트렌치코트를 필두로 한 외투의 매출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버버리는 지금까지 럭셔리 업계가 메인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 계층에 집중했다. 바로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들을 타깃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디지털은 버버리 부흥 전략의 중심이 됐다.
다행히 당시 버버리의 영국 본사 직원 중 70%가 30세 미만의 밀레니얼 세대였다. 버버리는 기술 혁신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이 수평적 분위기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전략혁신위원회를 마련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 중 하나가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ofthetrench.burberry.com)' 웹사이트다.
버버리가 2009년 개설한 '아트 오브 더 트렌치'는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사진을 업로드하고 다른 이용자와 공유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웹사이트. 이곳에 들어가면 세계 각지에서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다양한 인종, 연령, 성별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아트 오브 더 트렌치 프로젝트’가 열렸다. 버버리 청담동 매장에는 서울 곳곳에서 이 브랜드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진을 촬영한 30명의 이미지가 전시됐다. 배우 한효주와 최지우, 차승원, 고준희, 고수 등 500여명 이상의 게스트가 행사장을 방문했다. 특히 이 프로젝트 이미지는 디지털로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버버리는 2012년 매출 20억 파운드(약 3조3437억 원)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배나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버버리는 디자인 의사결정 체계도 통합했다. 홍콩의 디자인팀을 해체하고 트렌치코트를 주로 만들던 미국 뉴저지 공장을 폐쇄했다. 일관성과 통일성을 기하는 ‘원 브랜드-원 컴퍼니’ 전략에 힘을 싣기 위해서였다.
◆ 새롭게 시도하는 디지털 이벤트마다 ‘력셔리 업계 최초’ 수식어 달아
2014년 5월, 애플로 이직한 애런츠의 뒤를 이어 버버리의 CEO를 맡게 된 후계자는 놀랍게도 베일리였다. 총괄 디자이너가 경영까지 맡은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사 혁신’이었다.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이끄는 버버리는 고객에게 한발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기업 내 디지털 DNA를 자신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갔다. 또 글로벌 채널뿐 아니라 각국의 로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마케팅도 더욱 활발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에서 카카오, 일본에서 라인 등과 제휴를 맺고 각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버버리 매출은 여전히 호조세다. 베일리 이후로 버버리 매출은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버버리가 진행하는 대부분의 디지털 이벤트는 력셔리 업계 최초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