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무용론을 제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여 만에 나토 방위비 분담 문제를 공개석상에서 거론하고 나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나토와의 동맹 관계는 굳건하게 유지하겠지만, 방위비는 제대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전후 70여 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지켜온 군사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금액의 청구서를 받아들게 될 전망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란?]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주(州) 미 중부군사령부 연설에서 "나토 회원국이 반드시 방위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담해야만 한다(have to do that)"라고 말하면서 이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왜 분담금이 더 필요한지도 설명했다. 그는 "미군에 대해 역사적인 규모의 투자를 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이 자유 수호를 위해 함께한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 동맹의 공정한(fair) 분담을 의미한다. (방위비는) 우리에게 매우 불공평(unfair)했다"고도 했다.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겠지만, 미군 군비 확장의 재원 마련을 위해 '공정한 분담'을 동맹국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선언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의 국방 버전인 셈이다.

나토가 미국의 최대 군사동맹인 점을 감안하면, 나토를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제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토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의 총 국방예산은 연간 9183억달러(1054조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2017년 국방예산(40조원)의 26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트럼프의 '나토 때리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는 지난해 7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돈을 더 안 내면) 나토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그 나라가 미국에 대한 의무를 다했는지 검토한 뒤에 방어에 나설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나토의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했지만, 그의 진짜 속내는 유럽의 방위비 증액이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9월 필라델피아 유세에서 "그들(나토 회원국)은 자신들도 (방위비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낼 여력이 있다"고 했다. 취임 직전인 지난 1월 영국 더타임스 인터뷰에선 "나토는 시대에 뒤처졌다"며 "나토는 테러에 집중하지도 않고, 적절한 자신의 몫도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인준 청문회에서 "동맹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해 방위비 분담금을 문제 삼을 것임을 예고했다.

유럽도 방위비 증액 자체에는 공감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은 갈수록 커지고, 중동 지역 전쟁과 글로벌 테러에 대한 대응 수준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에는 나토 스스로 회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선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유럽 회원국이 돈을 더 낼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공언했다. 독일·프랑스 등도 국방비 증액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렸던 유럽이 갑자기 국방에 돈을 쏟아붓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작년 기준 이 기준을 만족한 나라는 나토 28개 회원국 중에서 미국을 비롯해, 영국·폴란드·그리스·에스토니아 등 5개국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1.78%였고, 세계 경제 4위인 독일은 1.19%에 머물렀다. 아직 경제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스페인은 0.91%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유럽 회원국의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멕시코 등을 상대로 통상 압박을 가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트럼프와 유럽의 기싸움은 오는 5월 24~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회원국 정상 회의에서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트럼프가 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나토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과 동시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