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5만명. 배우 진경(45)이 2013년부터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관객이다. 손예진·김혜수·전지현·전도연 등 톱스타보다 많다. '베테랑'(2015) '암살'(2015) 등 천만 영화에 출연한 뒤로는 '여자 오달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누적 관객 1억명 클럽'에 가입한 배우 오달수보다 재작년부터는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배우 진경은 "나를 드러내는게 힘들어 예능 출연을 고사한다"고 했다. "배우란 감정의 운동선수예요. 근육을 쓰듯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맡은 인물을 연기하는 게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진경은 "늘 조금씩 늦었다"고 말했다. 대학을 두 번 옮겼고 스물여섯 나이에 연극배우로 데뷔해 대학로 무대에서 14년을 보냈다.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2년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똑 부러진 며느리를 연기한 마흔 살 때였다. 하얀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그녀는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세상에 나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손에 끼고 온 반지 3개와 팔찌는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뺐다.

진경은 고교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 외국어고 학생 시절을 '중세 암흑기'라 불렀다. "늘 뒷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머리 박고 있던 어두운 아이였다"고 했다. "입시나 성적 경쟁이 절 내성적으로 만들었어요. 혼자 속앓이를 많이 했죠. 분노나 우울한 감정이 통로를 못 찾았던 것 같아요." 친언니가 속한 연극 동아리가 올린 공연을 우연히 봤다. "내 눈앞에서 배우들이 조명받고 뿜어내는 감정들이 굉장한 자극을 줬어요. 연기는 감정을 맘껏 표현해도 안전하다는 데 끌렸죠."

멋진 배우가 되면 자신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한국외대에 입학하고 나흘 만에 관뒀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2년을 보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저는 끼가 많은 사람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실력을 키우는 것만 생각했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생각 못하고."

졸업했지만 앞이 캄캄했다. 진경은 "14년 동안 부초처럼 떠다니며 작품을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고단한 무명 시절이라 부르지만 저는 좋았어요. 연극 무대에 서서 느끼는 희열이 너무나 소중했으니까." 대표작으론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희곡인 연극 '이'를 꼽았다. 굵직굵직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연극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힘들었던 건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이었다"고 했다. 이 '실직의 시간'이 찾아오면 학원에서 신인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쳤다.

진경은 "그러다 딜레마가 찾아왔다"고 했다. 서른다섯 살 때였다. "연극만 해선 살 수 없었어요. 묻기 시작한 거죠. 내가 널(연극) 이렇게 사랑하는데, 넌 왜 나에게 더 주질 않니?"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인 보상이 절실해졌다"고 했다.

드라마·영화로 건너가 다시 신인이 됐다. 한두 장면을 연기하는 단역 배우로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지난 5년간 드라마 19편, 영화 13편을 하다보니 조연을 맡아도 눈길을 집중시키는 '신스틸러'로 불리게 됐다. 최근 영화 '마스터'에서 이병헌의 사기꾼 동료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데 이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선 할 말 다하는 수간호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진경은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감사하고 신나서 달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지쳤어요. 이젠 한 템포 쉬면서 어떤 연기를 할지 생각해봐야죠." 영화·드라마 등 볼거리가 너무 많은 시대, 2~3개월 트레이닝을 받은 젊은 연기자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라고 했다. "관객에게 사기 치지 말아야죠. 핑계도 대면 안 돼요. 관객이 '진짜구나' 할 만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