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현 미래전략실장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 혁명 관련 정책이 올해 대선의 중요 소재로 떠올랐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주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놓고 한 차례 설전을 벌였다. 대선이 본격화되면 그런 경쟁이 더 달아오를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4차 산업혁명 이슈 선점 경쟁을 보면서 기대보다 걱정이 더 앞선다. 정보통신기술(IT)이 대선 메뉴가 될 때마다 한국의 IT 경쟁력이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약해졌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이 또다시 IT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을 권력 게임의 소재로 삼을 경우 그나마 남아 있는 'IT 강국'의 경쟁력마저 다 털어먹을 것 같다.

IT 등 기술 이슈가 대선판의 단골 메뉴에 오르는 것은 후보의 정치적 목적과 이에 편승한 IT 전문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후보는 IT 관련 비전을 제시해 미래 지향적인 경제 리더 이미지를 얻고 싶어 한다. 자칭 타칭 IT 전문가들은 캠프를 기웃거리면서 그런 후보에게 자신의 지식을 팔면서 집권 후 한자리를 노린다. 그런데 IT는 5년에 불과한 권력 행사를 통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여야(與野) 또는 보혁(保革)이라는 정치적 대결 프레임을 넘어서 국가의 미래를 보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분야다.

3일 오후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일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정책구상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기업에 공공인프라를 제공해 주목받고 있는 세운상가 팹랩을 방문해 로봇팔을 살펴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역설적으로 한국의 IT 강국 명성은 IT를 잘 몰랐던 대통령 집권기의 정책 덕분에 얻었다. 전두환 정부는 전전자교환기(TDX) 인프라를, 노태우 정부는 이동통신산업 토대를, 김영삼 정부는 초고속인터넷망 밑그림을 마련했다. 오늘날 유무선 인터넷 등 IT산업의 기본 틀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세 대통령은 공통으로 최고 전문가를 발탁하고 그들에게 전권을 줬다. 그래서 그 시절 IT 관료들은 특정 정치 세력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보고 장기 전략을 짜고 실행했다.

이후 IT가 선거와 통치에 이용되기 시작했고, 그 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의 정보통신부 해체다. IT 정책 구심점이 없어지자, 하나의 사안을 놓고 4~5개 부처가 서로 자기 영역이라고 다투는 일이 빈번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바로잡는다면서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정체불명의 부처를 만들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 결과 국가의 장기 전략은 실종됐고, 이벤트성 정책만 난무했다. IT 전문가들도 학연, 지연에 따라 찢어지고 반목했다.

두 정부가 10년 세월을 낭비하는 동안, 중국 IT 산업은 비상(飛上)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한 수 아래였던 중국 인터넷 산업은 이제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도 압도적으로 한국에 앞섰다. 중국의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수준은 미국과 견줄 정도다.

한때 전 세계가 부러워했던 IT 강국 경쟁력이 바닥을 드러낼 시점이 머지않았다. 대선 후보들은 화려한 수사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가득 찬 4차 산업혁명론을 휴지통에 넣고, IT를 정치 영역에서 분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집권하고 나서 정파를 초월해 최고 전문가를 발탁해 맡기겠다고 약속하는 게 최고의 선거 공약이다. 4차 산업혁명을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차라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