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인근 출판사에 다니는 탈북여성 조모(40)씨는 요즘 시도때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메시지 수신 알림 때문에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지경이다. 탈북민들이 모여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 ‘새터민들의 쉼터’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이 나뉘어 서로 경쟁적으로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는 글과 사진 등을 하루 수십 건씩 올리는 것이다.

조씨는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가리키며 “이것 좀 보라. 지금 또 이렇게 왔다. 탈북자 단체는 소속감 때문에 쉽게 탈퇴할 수도 없는데, 양쪽에 낀 나 같은 사람은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라고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탄핵 관련 게시물이 빼곡한 한 탈북자 페이스북 화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탄핵 찬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3만여 탈북민 사회도 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탄핵 찬성파는 ‘기껏 북한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찾아왔는데, 민주주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고, 반대파는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를 내세우고 있다. 조씨는 “하루에도 탄핵 관련 게시물에 댓글이 60개 넘게 달리는 등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탈북민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크게 단순 친목도모, 정치적 사회단체, 인권보호 단체, 민간봉사단체 등으로 성격이 나뉜다. 탄핵사태 이전까지는 정치 성향을 띄는 글은 정치적 사회단체 커뮤니티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커뮤니티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각종 글이 무분별하게 퍼지는 것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탈북자 커뮤니티 중 하나인 '새터민들의 쉼터'에 올라온 탄핵 관련 찬반 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공개TV 채널 ‘모르는 엉아들’을 운영하는 탈북민 김모(32)씨도 “탄핵과 전혀 관련 없이 탈북민과 남한 주민들이 자유 주제로 수다 떠는 프로그램인데도 사람들이 몰려와 탄핵과 촛불시위에 관한 댓글을 달고 탄핵 찬반에 대해 묻고 있어 상당히 곤란하다”고 말했다.

탈북민들 사이에서의 탄핵 찬반은 주로 ‘안보’와 ‘민주주의’중 어느 곳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극명히 갈리고 있다.

탄핵을 반대한다는 이모(65)씨는 “박근혜가 좋아서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안보 상황이 불안해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한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남침할 기회를 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북한의 탄압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북한체제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며 탈북민들의 안보의식은 상당히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서모(60)씨도 “대통령에게 분명 국정 농단의 책임이 있지만 명백한 대안 없이 탄핵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직접 맛본 젊은 탈북민일수록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윤모(26)씨는 “북한의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몸소 경험했는데, 민주주의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을 보니 반감이 크게 든다”며 빠른 탄핵을 원했다. 그러면서 “탄핵을 찬성하는 자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탈북민도 있었다. 임모(25)씨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다 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탄핵감”이라며 탄핵 찬반 집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었다. 취재 중 만난 다수의 탈북자는 “탄핵 후 과연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더 성장하고 개선될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불의에 맞서 일어선다는 점은 북한에서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