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북 상주에 사는 박모(57)씨는 약 660㎡(200평) 크기의 밭에 고구마를 심었지만 2년 연속 수확물을 거의 건지지 못했다. 멧돼지 떼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그는 "재작년에도 멧돼지들이 밭을 파헤쳐 지자체에 포획 신고를 했다"면서 "당시 엽사들이 나와 몇 마리 잡았지만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었을 뿐 멧돼지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2. 수렵 경력 10년 엽사 최모(46)씨는 작년부터 매주 전국 곳곳에 '멧돼지 출장'을 다닌다. 각 지자체에서 베테랑 엽사 수십 명으로 포획단을 꾸려 1년 내내 멧돼지 소탕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보통 군 단위에서 들어오는 신고 건수가 한 해에 500건 정도 된다"면서 "나갈 때마다 많게는 다섯 마리씩 잡는데도 멧돼지를 잡아달라는 신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야생 멧돼지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최근 2~3년 새 멧돼지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멧돼지는 암컷 한 마리가 한 해 열 마리 안팎 새끼를 낳을 정도로 다산(多産) 동물이라, 개체 수는 앞으로도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멧돼지 번식을 조절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이라고 말한다.

3일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멧돼지 개체 수는 45만마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11년 35만마리에서 5년 만에 10만마리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멧돼지 서식 밀도도 1㎢당 4마리에서 5.1마리로 증가했다.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액과 사망·부상 등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10여 년 전부터 포획과 사살 등 방법을 동원해 멧돼지 개체 수 줄이기에 나섰다. 2011년 처음 1만마리대를 기록한 포획·사살 멧돼지 수는 2015년엔 역대 최고인 2만1782마리까지로 확대됐다. 하지만 효과는커녕 멧돼지는 오히려 증가했다. 최근 10년 가까이 꾸준히 30만마리대를 유지하던 멧돼지 수가 연간 많게는 4만~6만마리씩 폭증하면서 지난 2015년엔 처음 40만마리대를 돌파한 것이다.

멧돼지 개체 수가 폭증한 것은 우선 '밀렵' 단속과 연관돼 있다. 정부 당국이 최근 밀렵 단속을 꾸준히 강화하자 예전보다 더 많은 멧돼지가 살아남아 왕성하게 번식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00년대 매년 600명가량 적발되던 밀렵꾼이 2010년대에 들어선 한 해 평균 2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김철훈 야생생물보호협회 부회장은 "지속적 단속으로 이제 수렵인 대부분이 허가된 수렵장을 찾는다"면서 "역설적으로 단속이 멧돼지 개체 수를 번식시켜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밀렵 단속의 역설'인 셈이다.

좁아진 서식지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의경 책임연구원은 "최근 지자체에서 지역별로 순환 수렵장을 운영하면서 멧돼지들이 그곳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이 많이 관찰됐다"면서 "이렇게 한 지역에 멧돼지들이 오밀조밀 몰려 살면서 짝짓기 활동이 늘어나 새끼를 많이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겨울 기온이 상대적으로 따뜻해 새끼 멧돼지들의 자연 도태율이 낮아진 것도 개체 수 증가 요인으로 분석됐다.

멧돼지 폭증과 이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선 당분간 멧돼지들을 최대한 포획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앞으로 매년 5만마리 정도 멧돼지를 포획·사살해야 멧돼지 폭증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멧돼지 고기 소비 장려 방안과 멧돼지를 잡아 겨울철 맹금류나 동물원에 먹이로 주는 방안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