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공 12곳에 외계 생명체가 타고 있는 거대한 반원형 비행 물체들이 날아온다. 일촉즉발의 위기. 미국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애덤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은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해독하라는 특명을 받고 비행 물체 안으로 들어간다. 이들은 7개의 다리를 가진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를 만나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2일 개봉한 영화 '컨택트'(감독 드니 빌뇌브)는 미국 최고 수준의 과학소설(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50)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중국계 미국 작가인 테드 창은 브라운대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과학도 출신. 1990년 등단 이후 최근까지 발표한 중·단편이 15편에 불과한 과작(寡作) 작가다. 세계적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두 편의 에세이를 싣기도 했다. 작가의 이채로운 경력이 일러주듯 '컨택트'는 낯선 생명체의 지구 방문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소통과 오해, 환대(歡待)와 적대(敵對)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매트릭스' '클라우드 아틀라스'처럼 이 영화 역시 동양적 세계관이 두드러진 최근 SF 영화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품상·감독상·각색상 등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외계 생명체와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 루이스 역의 에이미 애덤스.

낯선 외계 생명체의 방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話頭)다. 외계인이 던지는 메시지를 공존으로 해독하면 '미지와의 조우'나 '이티(E.T.)'처럼 평화로운 영화가 되겠지만, 선전포고로 해석하는 순간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우주 전쟁 영화로 바뀌고 만다. 이 양극단을 넘나드는 방식을 통해 영화는 별다른 충돌이나 파국 없이도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의 세계관은 원인과 결과가 단순하고 일직선적인 서양의 인과론보다는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이 맞물려 있다는 동양적 연기설(緣起說)에 가깝다. 영화 초반 루이스는 불치병을 앓던 딸을 잃고서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루이스의 결혼과 출산, 딸의 성장과 죽음이라는 단선적(單線的) 시간 구조는 서서히 뒤집힌다. 선후(先後)와 인과(因果) 관계가 뒤섞이는 듯한 복합적 이야기 구조에서 영화의 짜릿한 쾌감도 생겨난다. 처음이 끝이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암시하듯 영화 원제인 '도착(Arrival)'이라는 자막은 영화가 끝날 때에야 스크린에 떠오른다.

영화에서 딸이 엄마에게 물었던 학교 과제물의 해답이었던 '논 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은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패자의 손실이 곧바로 승자의 이득을 의미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너와 내가 모두 승리할 수 있는 상생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영화는 역설한다. 결국 루이스는 딸에게 일러줬던 정답을 실천으로 옮기기에 이른다. 암울한 미래를 비관적으로 묘사했던 다른 SF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세상사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영화는 한층 따스하고 낙관적이다.